[문화]불교, 유교, 기독교가 우리나라의 문화에 끼친 영향
- 최초 등록일
- 2005.05.24
- 최종 저작일
- 20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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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우리니라에 끼친 종교의 영향을 알 수 있습니다^^
목차
1. 불교가 우리 문화에 끼친 영향
2. 기독교문화가 우리문화에 끼친 영향
3. 유교가 우리문화에 끼친 영향
본문내용
1. 불교가 우리 문화에 끼친 영향
우리 나라에 불교가 처음으로 전해졌다는 공식적인 기록은 고구려 소수림왕(불기 915, 서기 372)이 중국의 전진왕으로부터 불상을 받은 것이다. 하지만 그 이전에 인도 출신인 가야국의 수로왕비 허씨가 인도로부터 불교를 직접 가져왔다는 학설도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소수림왕 이전에 이미 불교가 우리 나라에 뿌리 내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삼국시대에 전래된 불교는 각 나라와 지역마다 독특한 특성을 지닌 채 발전하면서 우리의 전통 사상과 문화로 깊이 뿌리내렸다. 불교는 특유의 사상적 포괄성으로 민속 신앙을 흡수하여 우리 민족의 전통 사상과 문화로 자리잡았다. 특히 원효, 의상, 원광 같은 고승들의 정신적인 역할은 삼국통일의 원동력이 되었고, 교학에 대한 독창적인 연구성과는 불교뿐만 아니라 한국 사상사의 근원이 되었다 고대 삼국은 주로 자신을 섬기는 고유신앙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신앙은 불교가 전래되면서 큰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다. 지금까지의 자연신적 신앙이 불교화되고 모든 신과 이에 대한 신앙이 불교신앙의 범주 안에 들어오게 되었다. 이는 불교라는 외래종교가 기존의 고유신앙을 흡수하여 새롭게 전개된 것이다. 원시 불교가 왕실중심으로 받아들여진 까닭은 왕자계급에 유리한 성격을 가졌기 때문이다. 원시불교는 북중국을 거쳐 우리나라로 전해졌는데 당시의 불교사상은 '왕즉불'의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었다. 불교수용에 반대의 입장을 취하던 사람들은 귀족들이다. 그 이유는 불교전래 이전 삼국사회에서는 무교신앙이 행해지고 있었다. 이는 왕이나 귀족이 모두 제사장으로서의 성격을 지녔고 성읍 국가의 기반 위에 갖추어져 왔다. 성읍국가가 연맹왕국내에 편입되면서 그 지배자들은 귀족으로 왕경에 거주하였고 연맹왕과 귀족은 상하의 종속관계로 나타나게 되었다. 반면 왕실중심으로 받아들인 초전 불교는 무교신앙을 대치하는 성격을 지닌 것이다. 초전 불교가 주로 왕실을 중심으로 전래되어 수용되었지만 왕실만의 문제로 남아있을 수 없을 정도로 성장해 갔다. 그런 속에 왕실의 불교를 귀족에게 강요함으로써 널리 흥포 하려 했다. 그러나 불교의 공인은 왕실의 일반적인 강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귀족들의 협조를 얻어야 이루어질 수 있으므로 일정한 타협을 이룸으로써 가능해졌다. 불교가 사상면에서 왕실과 귀족으로 하여금 대립되지 않고 조화를 이루게 하였고 그러기 위해 불교는 왕실의 입장에서는 물론 귀족의 입장에서도 충분히 받아들여질 수 있는 신앙으로 나타나야 했다. 불교를 공인하면서 왕실은 전륜성왕 관념을 포용하였다. 당시 원시불교는 정복국가를 정당화하는 면을 가졌다. 그리하여 공인이후 초기불교는 군주적 성격을 강하게 지녔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