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누망' 독서감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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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 지금은 새로 생긴 쇼핑몰도 들어서고 그 누가 봐도 번듯한 역사이지만, 1960년대 만해도 무작정 상경한 시골처녀들이 보따리를 들고 식모살이라도 가기 위해 발을 동동 구르던 애환의 종착역이었다. 그러나 서울역은 박정희가 추구한 '경제 근대화'의 상징적인 곳이었다. 그렇지만 동전의 양면처럼 그 곳으로 모이는 가진 것 없는 이들의 꿈은 서울역 뒷골목에서 아스라이 사라졌다. 서울역 뒤의 양동과 남산 판자촌 일대. 그 음습한 골목은 이 소설의 무대가 되는 곳으로 창녀와 펨푸, 그리고 넝마주이들이 만들어내는 매혈, 앵벌이, 매춘과 폭력으로 물들어진 세상이었다. 예순이 다 되어가는 길자는 왜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살인을 저질렀을까? 무엇이 그녀에게 살의를 품게 했을까? 책장을 처음 펼치자마자 나타나는 살인사건을 보면서 나는 너무나 궁금했다. 암세포가 온 몸을 휘감고 있는 연약한 노인을 살인으로 몰아놓은 책임이 무엇에, 혹은 누구에게 있는 것 인지. 그녀가 변호사에게 털어놓는 이야기는 비단 그녀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녀의 이야기는 바로 그 시대의 이야기였다. 대도시의 음습한 뒷골목에서 피어난 독버섯 같은 처절한 삶의 세목들을 낱낱이 들춰내는 그녀의 회상은 과거 한 시대를 통렬하게 비난한다. 창녀였던 그녀와, 국토건설단에 끌려간 짝귀. 두 사람 모두는 그 시대가 만들어 낸 희생자들이었다. 그들의 이루어지지 못한 애달픈 사랑마저도 국가와 시대의 탓 인 듯 비춰진다. 5·16 군사쿠데타의 와중에 부당한 국가권력이 위압하는 개인의 삶은 어땠을지 작가는 길자의 입을 통해 그려낸다. 국민을 위한 국가가 아닌 가진 자들의 권력다툼으로 인해, 그 밑의 국민들은 아무런 준비 없이 격동의 물결에 휩쓸려 자신들의 사랑마저도, 우정마저도 잃어버리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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