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주, 노천명, 정비석 친일작품 및 작가연구의 선정기준
- 최초 등록일
- 2005.06.05
- 최종 저작일
- 20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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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친일문학]서정주, 노천명, 정비석 친일작품 및 작가연구"에서 덧붙여서 올리는 글이에요. 그래서 무료로 올립니다. 이들 작가를 친일작가로 선정한 기준에 대해 서론에 덧붙일 수 있겠끔 만들었어요.
목차
없음
본문내용
친일문학선집에서 '노천명, 정비석, 서정주' 세 작가를 선정하게 되었는데, 이에 선정기준으로 ‘문학장르, 활동시기, 친일행적, 해방 후 활동 및 평가’를 두었다. 우선 문학장르를 기준으로 노천명과 서정주는 시, 정비석은 소설로 대표될 수 있는 작가로 보았다. 당시 1930년대 후반에서 1945년까지는 이들 문인의 문학활동은 순수문학적 성격보다는 다분히 선동문학, 프로파간다 문학 성격에 가까운 작품발표 내지는 신문기고문, 평론 등의 문필활동이었다. 노천명의 ‘부인근로대’는 당시 최정희, 모윤숙 등의 여류문인이 주도한 ‘후방문학’으로 대표될 수 있는 친일시이며, 서정주의 ‘마쓰이 히데오 송가’는 일제 말기 징병을 종용하는 대표적인 친일시로 볼 수 있다. 정비석은 단편소설 ‘성황당’, 수필 ‘산정무한’으로 알려진 작가로, 당시 매일신보나 국민문학지의 기고문, 평론을 통해 친일문필활동을 한 대표적인 작가로 보았다. 또한 세 작가는 모두 1910년대 이후 태어나서 지나사변 이후 일제하의 전문 문학교육을 받았으며, 최남선, 이광수 등에 의한 국민문학의 성장과 더불어 문학공부를 시작하여, 국민문학이 확립되는 1930년대 후반에서 새로운 신인작가로 문단에 등단하게 되는 공통된 활동시기를 갖고 있었던 점도 작가 및 작품2의 선정이유로 볼 수 있다.
무엇보다 세 작가를 선정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이들의 ‘해방 후 활동과 평가’에 대해 이 세 작가는 크게 대별되고 있다는 점이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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