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부 사학과]지리서 지도와 지역 파악의 체계화
- 최초 등록일
- 2005.06.09
- 최종 저작일
- 199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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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 지방사의 이해 수업 중 과제로 작성한 자료입니다.
목차
1. 전국 군현읍지의 집성과 지역 정보의 종합화
2. 군현지도의 제작과 지역 파악의 일원화
3. 주제별 지리서의 편찬과 지역 파악의 체계화
4. 북방지역, 도서지역에 대한 관심과 균형적 지역 파악
본문내용
18세기는 조선 후기 문화의 꽃이 활짝 피었던 시기이며, 지리학에서도 지리지, 지도, 실학적 지리학이 이 시기에 절정을 이루었다. 16세기 이후 지방 단위로 개별, 분산적으로 편찬되었던 읍지들을 국가가 종합하여 18 세기 중엽에 전국 읍지인 『여지도서(輿地圖書)』로, 18세기 말에는 『해동읍지(海東邑誌)』의 편찬으로 이어졌다. 이 시기의 전국 읍지들은 공시적(共時的)인 지리지로서 전국 각 지역의 사정을 일목요연하게 파악하는 중요한 수단이었다. 그 밖에 『추관지 (秋官志)』 『탁지지(度支志)』 등의 관서지(官署志), 『호구총수(戶口總數)』 『도로고(道路考)』등 다양한 주제별 지리서가 활발하게 편찬되었던 것도 동일한 배경으로 이해할 수 있다.
18세기는 조선의 지도 발달사에서도 획기적인 전환기였다. 지도의 정확성 등 지도 제작 기술의 발달, 양적인 증가가 전국 지도, 도별도, 군현지도, 관방도와 같은 특수도 등 다양한 종류의 지도에서 이루어졌다.
1. 전국 군현읍지의 집성과 지역 정보의 종합화
조선 전기에 활발하게 진행된 국가 주도의 전국지리지 편찬 사업이 16세기 후반 이후 군현에서 편찬하는 군현단위의 지리지인 읍지(邑誌)의 편찬으로 변화하였다. 16세기 말, 17세기 전반에 임진왜란과 정묘․병자호란과 같은 큰 전쟁을 겪음에 따라 피폐해진 지방 사회를 다시 회복하고 건설하는 데 지리지도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광해군대에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이 다시 간행되고, 그후 150여년이 지나 전국 각 지역에 대한 새로운 내용을 담은 종합적인 지리지의 필요성이 증대되고 있었다. .
참고 자료
조선은 지방을 어떻게 지배했는가, 한국역사 연구회 조선시기 사회사 연구반, 아카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