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미술사, 청중기회화, 양주팔괴] 청 중기의 ‘양주팔괴(揚州八怪)’에 대한 조사연구
- 최초 등록일
- 2005.06.19
- 최종 저작일
- 20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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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청 중기의 양주팔괴(揚州八怪)의 소개와 칼라 도판
목차
I. 서론
II. 양주팔괴
1. 정 섭
2. 이 선
3. 이방응
4. 금 농
5. 고 상
6. 왕사신
7. 황 신
8. 나 빙
III. 결론
도 판
본문내용
I. 서론
18세기에 들어선 후 사회생산력의 회복과 발전에 따라 상업도시가 번영하고 시민계층이 확대됨에 따라 화가의 예술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였으며 한족과 이민족 정부간의 민족모순이 감소하는 반면 봉건계급 내부의 모순을 포함한 각종 사회의 모순이 격화되어 초보적인 민주적 색체를 지닌 사상과 문화가 대두대기 시작하였다. 석도 등 청 초기의 창조정신이 풍부한 화가들과 그 화풍의 영향으로 염상(鹽商)과 부유한 상인이 모여들어 이미 회화의 상품시장이 형성된 양주에서 명화가와 여러 화파가 출현하였다. 그중의 건륭(乾隆, 1736~1795) 연간에 출현한 ‘양주팔괴(揚州八怪)‘는 석도(石濤)의 팔대산인(八大山人) 이후 청대화단에서 홀로 이채를 띤 화가들이었다. 그들은 과감하게 앞 시대 사람들의 규범을 혁파하여 예술에 있어서 자기 자신의 사상과 감정을 표현할 것을 요구 했다. 이러한 혁신적인 창조정신은 봉건적인 예법(禮法)에 반대하고 “마음과 영혼”을 표현할 것을 제창했던 명대 서위(徐渭)의 사상이 발전된 것이고, 또한 청 중기의 개성해방을 요구하는 사상이 결합된 것인데, 당시는 물론 후세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II. 양주팔괴(揚州八怪)
양주팔괴 화가는 대체로 세 가지 부류로 분류된다. 첫째는 관직을 버리고 양주에 온 문인으로 정섭(鄭燮, 1693~1765), 이선(李鱓, 1686~1762?), 이방응(李方應, 1695~1754)이다. 그들은 우수한 학문으로 관리가 되었으나 관직이 미천하였고 정치적 포부를 펼치지 못하여 실의에 빠져 양주에 가서 그림을 그려 생활하였다. 이들은 민간의 고통을 접촉하고 현실의 여러 가지 불평을 체험하는 한편 황제에게 충성하는 생활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가슴에 버리지 못하는 분노의 감정을 품고 화업의 재능으로 역대 문인들이 그렸던 사군자를 선택하여 그렸다. 시서화의 융합으로 불만을 발설하고 품격을 표현하여 “세상을 위해 힘쓰는 뜻[用世之志]”을 기탁하였다.
참고 자료
참고문헌
북경 중앙미술학원 미술사계 중국미술사교연실(1998), 간추린 중국미술의 역사, 시공사
葛路(1990), 中國繪畫理論史, 미진사
Michael Sullivan(1987), 中國美術史, 형설출판사
김명수 발행(1986), 中國의 名畵, 삼성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