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와 원의 관계] 고우성(高郵城) 전투에 참전한 고려인들에 대한 고찰
- 최초 등록일
- 2005.06.25
- 최종 저작일
- 20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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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고우성전투에 참전한 고려인과 전투의 과정에 대해 서술.
목차
Ⅰ. 서론
Ⅱ. 고우성 전투의 전개와 이에 참가한 고려인들
1. 고우성 전투의 전개
2. 고우성 전투에 참가한 고려인들의 구성과 활약
Ⅲ. 결론
본문내용
고려 중기 원이 고려를 지배하기 시작한 이래로 고려인들은 자의든 타의든 원에 진출하여 많은 활동을 하기 시작하였다. 원의 직․간접적인 지배로 인해 고려 고유의 지배 질서는 무너지게 되었고 새로운 지배세력인 원과 고려의 왕 사이에서 원에 편승한 친원 세력이 많이 등장하게 되었다. 고려의 왕이 원황실의 부마의 지위로서 오랫동안 이어져 온 상황에서 원지배가 확고하게 자리 잡은 고려 후기에는 원과 고려가 아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게 되었다. 그래서 원이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을 때에 원이 고려의 힘을 빌리는 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원이 중원을 지배하기 시작한 이후 내부에 대한 통제력이 점차 약해져서 화남지방에서 원에 대항한 반란이 많이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河南지방에서는 韓山童과 韓咬兒 등이 처음 반란을 일으켰고 潁川에서는 劉復通이 군사를 일으켰다. 이들과 함께 關先生, 沙流, 二王, 士誠 등이 일어나 중국 본부를 침범하여 원나라는 크나 큰 위기에 봉착하게 된다. 이 중에서 대운하 근처의 고우성을 점령한 장사성의 군대는 원에 있어서 엄청난 위협이 되었다. 이런 위기의 상황에서 원은 고려에 원군을 청하게 되었고 이를 고려가 응하여 廉悌臣, 柳濯 등을 비롯한 장수들을 파견하게 된다. 이들을 비롯한 고려 내의 고려인들과 원 내의 고려인들이 고우성 전투에 많이 참여하게 되는데 이들 중에서 사료에 기록이 있는 이들을 중심으로 분석하여 고우성 전투의 전개와 고려인들의 활동을 알아보도록 한다.
공민왕 3년(1354) 6월 초하루 신묘일에 平康府院君 蔡河中이 원에서 돌아와 원나라 우승상 脫脫의 말이라 하면서 “나는 황제의 명령을 받고 남방을 정벌하게 되였으니 고려왕은 용감한 정예 부대를 보내어 원조하여야 한다.”라고 전하고 있는데 『明史』의「장사성 」열전을 볼 때 고우성은 1353년(至正 13년)에 이미 장사성의 군대에 의해 점령된 상태였다
참고 자료
민족문화추진위원회 역, 『(국역)고려사절요』 3, 민족문화추진위원회, 1976.
사회과학원 고전연구실 편, 『북역 고려사』 4, 11, 신서원, 2002.
홍영의, 「공민왕의 반원정책과 염제신의 군사활동 -국방개혁을 중심으로-」, 『군사』 23호, 국방부전사편찬위원회, 19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