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
- 최초 등록일
- 2005.06.29
- 최종 저작일
- 20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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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궁궐의 의미와 궁궐의 어원
2)비원의 뜻과 역사
3)비원의 구성
본문내용
비원은 조선시대의 커다란 궁궐 곧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경희궁, 경운궁의 하나인 창덕궁 뒤쪽에 자리 잡은 정원으로 왕가에서 휴식을 취하던 곳이다.
본래 이곳은 비원이라 하지 않고 처음 만들어진 조선시대 초기부터 고종때까지는 후원(後苑), 북원(北苑)그리고 금원(金苑)으로 불려졌다. 조선시대의 옛 기록에서는 비원이라는 말은 보이지 않고 후원, 북원, 금원만이 보이는데 그 가운데서도 후원은 가장 많이 볼 수 있다. 주남철, 김종섭 <비원> P.8 대원사 1990
창덕궁이 자리잡은 곳은 지금의 와령동 남쪽이고 비원은 그 뒤인 북쪽이므로 후원 또는 북원이라 불렀으며, 한편 일반인의 접근이 금지되어 공개되지 않기 때문에 왕가에서는 금원 또는 고종 이후에는 비원이라 불렀다. 그러나 후원, 금원, 북원, 비원들은 결국 하나의 정원(庭園)인데, 이 정원이라는 말은 사실 일본인들이 만들어 낸 말이라 생각된다. 고려시대에는 원림(園林), 정원(庭院), 임천(林泉), 화원(花園)등의 말들이 많이 쓰였고 고유 명사로 어떤 특정한 정원을 말할 때에는 제일 뒤쪽에 원(園)자만을 붙여 '소쇄원(瀟灑園)'등으로 썼다고 한다.
이렇게 볼때 우리가 그동안 사용했을 비원이라는 말은 사실 후원으로 고쳐 부르는 것이 마땅하고 왕의 동산이라는 뜻에서는 금원이라 부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지금의 서울이 조선시대 도읍이 되는 것은 태조 즉위 3년(1394)의 일이다. 그러나 어려운 일들이 잇달아 일어나자 제2대 정종은 도읍을 예전 자리인 개성으로 옮겼다. 이어 등극한 태종은 태조의 뜻을 쫓아 도읍을 다시 한양으로 옮기는 일을 착수하였다. 도읍을 옮기는 일로 기존 경복궁 이외에 이궁을 지었는데, 1년만인 태종 5년(1405)에 준공되어 창덕궁이라 명명하였다. 앞의 주와 같음 P.11
참고 자료
<한국의 궁궐>
<비원>
<우리건축 틈으로 본다>
<우리 옛 건축에 담긴 표정들>
<한국의 전통건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