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고대 로마사]콘스탄티누스 대제
- 최초 등록일
- 2005.07.01
- 최종 저작일
- 20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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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기독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 대제에 대해
상세하게 정리한 레포트 입니다..
각주도 많이 달았으니까 많은 도움 되실꺼에요 ^^
목차
1.서 론
2.본 론
1) 콘스탄티누스 대제
2) 다빈치 코드에서 나온 콘스탄티누스 대제를 둘러싼 논쟁들
3.결 론
본문내용
콘스탄티누스가 벌인 마지막 대규모 원정은 페르시아 정복이었다. 그는 페르시아인들을 기독교도로 만들 계획이었고, 그 과정에서 요르단 강에서 세례를 받았다 이는 콘스탄티누스의 뛰어난 정치적이자 지도자로써의 행동을 보여주는 모습이다. 자신을 마치 예수의 모습에 빗대어서 요르단강에서 세례를 받음으로써 자신을 단순한 황제가 아닌 신성한 존재로 신격화 시킨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 이러한 야심만만한 계획의 준비 작업으로, 조카인 한니발리아누스를 ‘아르메니아와 근접 지역의 왕’으로 임명했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한니발리아누스가, 자신이 확실히 빼앗으려는 페르시아 왕의 칭호인 ‘왕 중의 왕’을 자처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337년의 부활절 직후에 콘스탄티누스는 병이 들어 일어나지 못했다. 그는 죽음이 임박했음을 인식하고 니코메디아의 주교인 유세비우스를 불러 앙키로나에 있는 황제의 저택에서 세례를 받았다. 콘스탄티누스는 337년에 성령 강림 대축일(5월22일)에 앙키로나에서 사망했다. 그의 시신은 자신의 묘로 쓰기 위해 지은 콘스탄티노플의 열두 사도 교회로 옮겨졌다. 교회 내에는 열두 사자를 위한 열두 개의 가짜 석관이 있었다. 콘스탄티누스의 석관은 열세 번째로 가운데에 놓였다. 그것은 새로운 기독교 개종자가 묻힐 소박한 장소라기보다는 옛날 식의 신격화를 암묵적으로 주장하는 황실의 입장을 나타내는 것이었다.콘스탄티누스의 장례 소식이 로마에 전해지자 시민들은 그가 로마가 아닌 새 수도에 묻히기를 원했다는 사실에 격분했다. 그럼에도 원로원은 고인이 된 콘스탄티누스를 공식적으로 신격화했는데, 이는 종교적인 모순을 보여주는 마지막 행위였다. 이렇게 해서 로마 최초의 기독교도 황제는 이교도인 전임 황제들의 대열에 합류했다. 그러나 상황이 많이 변해 있었고 콘스탄티누스의 죽음은 제국 역사에서 진정으로 실제적인 전환점이 되었다.
참고 자료
≪참고문헌≫
Michel Baigent, Richard Leigh, Henry Lincoln, 『The Holy Blood and the Holy Grail』, Arrow,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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