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사] 조선시대 대간제도와 3사의 개혁
- 최초 등록일
- 2005.07.05
- 최종 저작일
- 20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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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머리말
Ⅱ. 조선의 3사
1. 사헌부
2. 사간원
3. 홍문관
Ⅲ. 대간제도
1. 대간제도의 전개과정
2. 대간제도의 역할
(1) 왕과 대간
(2) 관료와 대간
3. 대간제도의 개혁
(1) 유성룡의 대간개혁론
(2) 유형원의 사간원 폐지론
(3) 이익의 대간개혁론
(4) 정약용의 대간폐지론
Ⅳ. 꼬리말
본문내용
Ⅲ. 대간제도
1. 대간제도(臺諫制度)의 전개과정
대간제도의 연원은 중국에 있다. 대간은 대관(臺官)과 간관(諫官)을 통칭하는 이름이었으나 기능이 복합되면서 대간으로 통칭되었다. 대관은 관리의 감찰기구(監察機構)에서 출발했고, 간관은 임금의 잘잘못을 비판하는 간쟁기구(諫諍機構)로서 출발했다.
신라 때에는 간관이 따로 존재하지 않았다. 즉 대관과 간관의 분화가 이루어지지 못한 것이다. 때문에 감찰관인 사정부(司正府)의 대관이 간관의 임무를 겸했다고 한다. 따라서 왕명에 따른 관리 감찰 기능은 활발했던 반면, 왕권을 견제하는 간언활동은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고려시대에 들어와서야 대간제도는 본격적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성종 때 중앙관제의 정비를 계기로 사헌대(司憲臺)를 어사대로 확대 개편하고, 대부(大夫)이하의 여러 대관을 설치했다. 또 내사문하성(內史門下省) 산하에 여러 낭사(郎舍)를 두어 간관의 직무를 수행하게 했다. 고려의 대간은 대관·간관을 불문하고 모두 재상의 통솔하에 있었다. 어사대의 장은 재상이 겸직했고, 낭사는 내사문하성의 하부기관이었던 것이다. 재상권과 독립된 위치에 있지 못했던 고려의 대간인지라 재상을 거침없이 탄핵하기는 어려웠다. 고려의 대간은 왕권은 제약했으나 정작 재상권은 제약하지 못했기 때문에 고려의 귀족정치를 옹호하는 방향으로 운영될 수밖에 없었다.
조선은 건국 후 고려의 대간제도를 계승하면서도 새롭게 정비하는 과정에서 대간의 위상을 훨씬 강화시켰다. 조선의 사헌부 직제편성에서 두드러지는 현상은 고려와는 달리 사헌부의 장관인 대사헌을 재상으로 겸직시키지 않고 독립적인 지위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사헌부의 위상이 현격하게 높아진 것이다. 간관의 경우에도 문하부의 하부조직으로 존재했던 낭사를 사간원(司諫院)이란 하나의 관청으로 독립시켰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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