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고대사] 가야문화의 동진과 임나일본부설의 검토
- 최초 등록일
- 2005.08.10
- 최종 저작일
- 20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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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들어가며
Ⅱ. 가야문화의 동진
①가야문화의 동진
②에가미의 기마민족설
Ⅲ. 임나일본부설에 관한 제설과 3~5세기 왜의 성격
①임나일본부성에 관한 여러 학설의 검토
②3~5세기 왜의 성격
③임나일본부설의 비판
Ⅳ. 임나일본부설의 비판과 신 해석
Ⅴ. 나오며
본문내용
①가야문화의 동진
북규슈에 진출한 가야인들은 계속 세력을 확장하여 야마구치를 거쳐 시마네로 뻗어 나갔다. 김해의 부원동에서는 가야의 토기로 적갈색 토마(土馬)와 회청색 어형(魚形)이 발굴되었다. 일본에서도 이런 토마(土馬)가 발견되었는데 이것이 특히 중부 일본의 일본해 지방, 고래로 우리나라와 관계가 깊은 이즈모 지방에 집중되는 것이 주목되며 이로 보아 이즈모 지방은 가야인들이 북규슈 후쿠오카에서 기나이쪽으로 진출하는 하나의 거점이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한편 가야의 토기가 스에키(須惠器)와 하지키(土師器)의 원류라는 고고학적 사실에서도 가야 세력권의 기나이 지역 진출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키는 가야의 연질 적색토기계이고, 스에키는 가야의 도질 토기계라고 하겠다. 일본의 도질토기 곧 ‘스에키’의 양상은 신라지역과 가야지역의 양상이 농후하니 신라와 가야의 도질토기의 생산기술이 흘러들어가서 일본 스에키의 발전을 촉진시킨 것으로 생각되는데, 이것은 스에키가 낙동강 유역을 중심으로 한 가야지방에 분포된 도질토기의 양상과 같은 것에서 유츄할 수 있다. 한국 남부지방의 스에키에 해당하는 회청색 경질토기 문화가 시작된 것은 1세기 경으로 일본의 3세기 후반과 비교하면 훨씬 앞서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일본의 고분시대의 상층문화는 그 전 시기인 야요이 문화와 완전히 단절되어 있는데, 이것은 야마토 국가를 형성한 지배세력과 야요이 문화를 주도한 지배층과의 교체가 있었던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즉 나라지방의 초기의 고총고분은 말할 것도 없이 그 시대의 지배층의 분묘인데 그것이 묘제뿐만 아니라 시체, 부장품 등의 매장방법까지도 반도의 고분과 비슷한 것은 그 지배층이 반도에서 건너간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고분시대의 토기, 철제의 농공구, 무기, 철제, 금동제, 또는 옥제의 복식품 등에 이르기까지 상층계급의 생활문화가 거의 모두 가야지역에서 발견된 그것들과 비슷한 것은 고분시대의 상층문화가 선택적인 채용이 아님을 말해주는 것이다.
참고 자료
윤석효, 『신편가야사』, 혜안, 1997
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한국 고대사 속의 가야』, 혜안, 2001
http://kin.naver.com/open100/entry.php?docid=585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