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 밀양 영남루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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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루 앞 마당을 걷는데, 간만에 밟아보는 흙의 느낌이 좋다. 비가 와서 그런지 공기도 상쾌하고, 분위기까지 한적한데다가 소란스럽지도 않다. 이런 것을 가리켜 ‘고즈넉하다’라고 하는 건가. 그런데 이상하게 생긴 돌이 있다. 동심원이 여러 개 겹쳐진 처음 보는 모양의 돌이다. 석화라고 한단다. 재질이 특이하고, 이곳 영남루에서만 볼 수 있는데, 비온 뒤 에야만 그 모습을 확연히 느낄 수 있단다. 그러고 보니 꽃처럼 보이기도 한다.
영남루 오른쪽에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이 보인다. 계단 위에서 아래를 내려보니 영남루의 고즈넉한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영남루의 정원 같아 보이는 그곳은 여러 꽃이 만발하여 참 보기 좋았으나, 비싼 석재를 깎아 만든 계단이며 바닥, 주위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매표소, 만든지 오래되지 않은 듯한 탑까지. 이 모든 것들이 영남루 본연의 한적하고 화려하지 않은 모습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이곳도 어쩔 수 없는가 하는 얼마의 실망감을 안은 채, 영남루 뒤쪽의 아랑각으로 향했다.
안내문에 적혀 있는 아랑 전설의 내용은 대략 이렇다. “아랑은 당시 밀양부사의 딸로 영남루에 달구경을 갔다가 괴한에게 핍박을 받자 죽음으로 순결을 지켰다. 훗날 사람들이 아랑각을 지어 그의 혼백을 위로하였다.” 아랑의 전설은 아마도 당시 영남루의 라이벌 이었던 촉석루와 부벽루에 뒤지지 않는 명성을 얻고자 만들어진 이야기라는데 일행들 모두가 동의한다. 촉석루에는 논개의 이야기가, 부벽루에는 김황원의 이야기가 있으니, 영남루도 그에 뒤지지 않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을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영남루 주위에 울창한 대나무 숲도 아랑의 정절과 연관시켜 인위적으로 조성한 것이거나, 아니면 원래 있던 대나무 숲과 관련지어 아랑 전설을 만들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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