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남미문학] 테라노스트라
- 최초 등록일
- 2005.09.26
- 최종 저작일
- 20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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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잘 작성된 자료입니다. 믿고 받아주세요 물론 A+ 받은 자료입니다. ^^
목차
Ⅰ. 중남미의 바로크 - 제 3의 미학
Ⅱ. 『Terra Nostra』
Ⅲ. 그리고 라틴 아메리카
본문내용
‘바로크’의 어원에 관하여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포르투갈어로 ‘Perla desformada’ 즉, ‘일그러진 진주’라는 설이 정설로 받아들여진다. 그렇다면 바로크는 무엇을 의미 하는가? 그 사전적 의미는 [17∼18세기에 유럽, 특히 프랑스·이탈리아 등지에서 유행한 그림·건축·조각·문학·음악·장식 미술 등의 한 양식]이라고 정의되지만 스페인과 그 식민지였던 라틴 아메리카에 있어 ‘바로크’란 이보다 더 큰 의미를 갖는다.
1492년 그라나다를 수복함으로써 국토회복운동을 종결지은 스페인은 끄리스또 발 콜론에 의한 신대륙 발견으로 인해 국가 내ㆍ외로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한다. 이베리아 반도의 완전한 장악은 물론 중남미, 아프리카를 비롯한 세계 각지에 가장 많은 식민지를 보유하게 됨으로써 명실상부 유럽 최강대국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하지만 바로 이 시점에서 카톨릭 양왕과 그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펠리페 2세는 스페인 역사에서 가장 뼈아픈 실수라고 할 수 있는 쇄국정책을 시작한다. 스페인은 우리나라와 같은 반도 국가로서 그 지리적 특성상 외부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으며 오랜 시간이 흘러 카톨릭, 유대, 이슬람등의 여러 문화, 여러 인종이 혼합되어 형성된 국가이다. 그러한 스페인의 ‘다양성’은 예나 지금이나 스페인을 통치하는 입장에서는 큰 부담으로 작용해왔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스페인의 지배층은 하나의 합일되고 통일된 집단 (Unidad)을 형성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러한 경향은 20세기 중반의 프랑코 독재정권에서도 찾아 볼 수 있는데 16세기 펠리페 2세 역시 강력한 통치수단으로써 ‘초강경 카톨릭’을 선택하게 된다. 종교 재판소(Inquisición)를 앞세운 잔혹한 탄압은 모든 제반 학문에 걸쳐 이루어졌기 때문에 종교재판의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가지고 있는 수학, 과학, 천문학 등의 학문은 완전히 말살되다시피 되었고 피의 순수성운동(Limpieza de sangre)의 기치하에 이루어진 유태인과 모로인들의 추방은 스페인 경제를 파국으로 몰고 감으로써 모든 성장 동력을 마비시켰다.
참고 자료
1. 까를로스 푸엔테스, 『라틴 아메리카의 역사』, 까치글방, 19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