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시]중국 문학사> 당대 시인
- 최초 등록일
- 2005.10.08
- 최종 저작일
- 20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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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중국 문학사에서 이백, 백거이, 유영 시인들의
유래와 대표적인 시작품과 해석을 담은 보고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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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이백
2. 백거이
3. 유영
본문내용
▶이백 [李白, 701 ~ 762]
자 太白. 호 靑蓮居士. 두보(杜甫)와 함께 ‘이두(李杜)’로 병칭되는 중국 최대의 시인이며, 시선(詩仙)이라 불린다. 1,100여 편의 작품이 현존한다. 그의 생애는 분명하지 못한 점이 많아, 생년을 비롯하여 상당한 부분이 추정에 의존하고 있다. 그의 집안은 甘肅省 西縣에 살았으며, 아버지는 서역(西域)의 호상이었다고 전한다. 출생지는 오늘날의 四川省인 촉(蜀)나라의 彰明縣 또는 더 서쪽의 서역으로서, 어린 시절을 촉나라에서 보냈다.
남성적이고 용감한 것을 좋아한 그는 25세 때 촉나라를 떠나 揚子江을 따라서 江南 ·山東·山西 등지를 편력하며 한평생을 보냈다. 젊어서 道敎에 심취했던 그는 산중에서 지낸 적도 많았다. 그의 시의 환상성은 대부분 도교적 발상에 의한 것이며, 산중은 그의 시적 세계의 중요한 무대이기도 하였다.
그는 불우한 생애를 보내었으나 43세경 玄宗의 부름을 받아 長安에 들어가 환대를 받고, 翰林供奉이 되었던 1, 2년이 그의 영광의 시기였다. 道士 吳筠의 천거로 궁정에 들어간 그는 자신의 정치적 포부의 실현을 기대하였으나, 한낱 궁정시인으로서 지위를 감수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淸平調詞》 3수는 궁정시인으로서의 그가 현종 ·양귀비의 모란 향연에서 지은 시이다. 이것으로 그의 詩名은 장안을 떨쳤으나, 그의 분방한 성격은 결국 궁정 분위기와는 맞지 않았다. 이백은 그를 ‘謫仙人’이라 평한 賀知章 등과 술에 빠져 ‘술 속의 八仙’으로 불렸고, 방약무인한 태도 때문에 현종의 총신 高力士의 미움을 받아 마침내 궁정을 쫓겨나 창안을 떠났다. 창안을 떠난 그는 河南으로 향하여 洛陽 ·開封 사이를 유력하고, 뤄양에서는 두보와, 카이펑에서는 高適과 지기지교를 맺었다.
두보와 石門(陝西省)에서 헤어진 그는 山西 ·河北의 각지를 방랑하고, 더 남하하여 廣陵(현재의 揚州) ·金陵(南京)에서 노닐고, 다시 會稽(紹興)를 찾았으며, 55세 때 安祿山의 난이 일어났을 때는 宣城(安徽)에 있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