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소설론]김시습에 대한 작가론
- 최초 등록일
- 2005.10.11
- 최종 저작일
- 20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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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어느 사회에나 바르지 않은 현실을 비판하는 지식인이 있게 마련이다. 이처럼 조선조에 사대부의 일원이었으면서도 체제에 대한 불만과 현실에 대한 불만으로 안주하지 못한 지식인을 방외인(方外人)이라 불렀다. 오백여 년 역사의 조선왕조에서 비판적인 지식인으로서 대표적인 인물을 들자면 우선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1435~1493)을 들 수 있다. 김시습은 방외인의 문학을 처음으로 연 인물이다. 작가 김시습은 조선의 첫 소설가일 뿐 아니라 재능 있는 시인이었다.
이제 결코 순탄하지만은 않았던 김시습의 생애를 통해 그 내면을 살펴보고자 한다.
목차
1.들어가며
2.본론
3.마치며
본문내용
어린 시절의 김시습은 신동으로 알려졌다. 김시습은 한미한 무반 가문에서 태어났지만 놀라운 재능을 타고났다. 김시습이 8개월 되던 때에 아직 말을 잘 못하면서도 벌써 글자의 뜻을 제대로 알아서 ‘배우면 곧 익힌다’는 의미로 시습(時習)이라 하였다. 그는 5세에 이미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면서 세종으로부터 “잘 가르쳐라, 장차 내가 크게 쓰리라.”라고 장래를 약속받기까지 했다. 이렇듯 김시습은 어린 날부터 남들과 다른 출중한 능력을 보였고 뛰어났다. 그 후 수많은 책을 읽으면서 학문의 폭과 깊이를 더해갔으며 관직에 올라 어진 임금을 모시려는 꿈을 키우며 유학으로 입신양명(立身揚名)하겠다는 야망을 불태웠다.
신은 그에게 천재성을 부여하고 동시에 불우한 환경에 처하게 만들었다. 신은 아마도 불우한 환경 속에서 발생하는 고난과 역경을 헤쳐 나가는 과정에서 김시습이 점차 천재성을 완성 하고 발현 하라는 깊은 뜻을 숨겨 놓았던 것 같다. 10대 중반부터 김시습에게 뜻하지 않는 불행이 닥쳐오면서 그의 생애는 점점 어둡고 고독해져 갔다. 어머니의 죽음, 잇따른 아버지의 병환, 자신을 돌보아주던 외숙모의 죽음 등 불행을 겪지만 얼릴 때부터 품어 온 꿈을 이루기 위해 20세까지는 공부에 열중했다. 자신의 불행한 환경과 낮은 그의 신분은 그가 더욱 출세의 길을 위해 공부에 전념하고 욕망을 꿈꾸게 만들었다.
그러던 중 김시습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는 엄청난 사건이 발생한다. 그것은 바로 수양대군의 왕위 찬탈사건이다. 이 소식을 듣고 글공부에 열중하고 있던 김시습은 책을 모두 불사르고 머리를 깎은 뒤 승복을 입고 방랑의 길을 떠났다. 수양대군의 왕위 찬탈 사건이 김시습에게 이렇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 까닭은 무엇일까? 단순히 과거에 합격하여 출세의 길에 들어서려는 것이 목표였다면 이 사건은 김시습에게 커다란 영향을 줄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김시습은 유교의 왕도정치(王道政治)를 생각하고 있었기에 이에 어긋남을 용납할 수 없었으며, 그의 행동은 곧 유생의 관심과 철학에서 나온 행동으로 보여 진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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