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답사][답사후기] 수원성과 융건릉
- 최초 등록일
- 2005.10.13
- 최종 저작일
- 20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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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수원 지역 학술답사를 다녀와서 쓴 보고서입니다
수원성과 융릉 건릉에 대해 조사하고
다녀온 후에 짧은 감상을 포함하여 썼습니다.
목차
꿈의 문화유산, 수원 화성(華城)
1. 일시
2. 장소
3. 경로
4. 화성 이름의 유래
5. 연표
6. 화성성역의 의의
7. 화성 관련 기록
8. 훼손된 화성
9. 융건릉
10. 답사를 마치고
본문내용
4. 화성 이름의 유래
․고구려 : 매홀(買忽)
․신라 : 수성(水城)
․고려 : 수주(水州), 수원(水原)
․조선 정조 : 花(華)山 → 화성(華城)
정조가 사도세자의 무덤을 수원읍치가 있던 화산으로 옮기면서 화성이라 불렸고 이것을 시작으로 팔달산 근처에 수원읍치를 두면서 수원화성이 건축되었다.
5. 연표
․1789 (정조13년) : 사도세자 묘 이전 (배봉산 → 화산), 왕세자 수태
․1790 (정조14년) : 6월18일 혜경궁 홍씨 생신날 왕세자 탄생
․1794 (정조18년) : 1월 혜경궁 홍씨와 사도세자의 6순 기념사업으로 화성성역 시작
(한양천도 400주년 되는 해임)
․1795 (정조19년) : 혜경궁 홍씨 회갑잔치를 화성에서 함
(수원으로 가는 새로운 길을 마련함-시흥, 안양)
․1796 (정조20년) : 9월 화성 완공, 10월16일 낙성연(落成宴) - 건축기간 34개월
․1800 (정조24년) : 왕세자 책봉, 왕세자비 (김조순의 딸) 책봉, 정조 사망
(주자서거 600주년 되는 해임)
․1804 (갑자년) : 왕세자 15세로 성년이 되고 혜경궁 홍씨가 7순이 되는 해로 정조는 왕위를 물려주고 스스로 어머니와 함께 화성에 내려가 살며 아들로 하여금 사도세자를 추숭하고자 하였음.
6. 화성성역의 의의
화성신도시의 건설(華城城役)은 정조의 왕권 강화와 조선왕조의 중흥을 상징하듯 추진되었던 국가적 사업이었다. 애초의 10년 계획을 크게 단축하여 34개월(중간의 6개월 정역을 감안하면 실제론 28개월)만에 이루어진 화성 신도시의 건설은 정조로서는 갑자년 이후 사도세자의 추숭과 자신의 은퇴를 대비하는 사업이었지만, 이는 조선사회의 정치적, 사회경제적 요구에 부응하면서 조선의 변화를 가속화시키는 사업이기도 하였다. 영․정조대의 조선사회는 전면적 변동에 직면하여 있었으며 조선사회의 중심이었던 서울은 전사회적 변화의 핵심에 위치하여 그 변화를 선도하고 있었다. 화성신도시의 건설은 서울에서 비롯된 이러한 기류의 귀결이었다.
참고 자료
정조의 화성건설 - 최홍규, 일지사
실학정신으로 세운 조선의 신도시 수원화성 - 김동욱, 돌베게
정조의 화성행차, 그 8일 - 한영우, 효형출판
http://limyonghan.netian.com - 임용한의 역사여행
http://www.koreasurveyclub.com - 우리문화유적답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