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세종의 생애와 사상
- 최초 등록일
- 2005.10.26
- 최종 저작일
- 20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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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세종대왕이라는 인물을 통해서 보게되는 조선사회전반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1. 세종의 생애
2. 태종의 노력
3. 세종의 시대
1) 제도적 장비
2) 문화적 자기 인식의 심화
3) 민생과 산업 기술의 확보
4) 교화 체제의 정립
4. 세종의 통치이념
1) 정치적 배경
2) 유교정치 이념의 확립과 구현
3)법치주의 이념과 위민정책
4. 맺음말
본문내용
세종의 성격은 모계를 많이 닮은 것이 아닌가 한다. 태종이 용맹스럽고, 호전적이며, 과단이 있는 데 비하여 세종은 신중하고, 조심성 있고, 인내심이 강하면 끈기가 있었다.
세종은 특히 기억력이 비상했다. 책을 읽으면 잊어버리지 않고, 신하들의 이름이나 가계(家系)를 모두 기억하였고, 손에서 책을 놓을 때가 없었을 정도로 머리가 좋으면서도 열심히 공부하는 성격이어서 훌륭한 학자적 자질을 갖추고 있었다. 조선왕조의 국왕 중에서 세종이 정조와 함께 가장 훌륭한 학자가 된 것도 이 때문이라 할 수 있겠다.
세종은 육식을 좋아했고, 술은 잘 못했으며, 하루에 네 번 식사를 했다고 한다. 풍채는 좋은 편이고, 운동은 별로 좋아하지 않아 몸이 난 편이었으며 당뇨병(糖尿病)・풍질(風疾) 등의 고질 때문에 건강은 좋지 않았다. 말솜씨가 좋고 논리적이었으며, 참을성이 많고, 화를 잘 내지 않았다. 그러나 일을 추진하는 능력은 뛰어났으며, 하고자 하는 일은 결단을 내려 끝까지 밀고 나가는 과단성과 추진력이 있었다. 이러한 성격은 조신들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양령대군을 극진히 대접하고, 첨사원(詹事院)을 설치하여 세자에게 섭정을 시키려는 데, 또는 내불당(內佛堂)을 끝까지 세운 데서 잘 나타난다.
세종은 바둑과 같은 잡기나 매, 화초, 시, 서도도 좋아하지 않았으며, 음악이론이나 작곡에는 능했으나 노래하거나 악기를 연주하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았다. 세종이 박연(朴堧)등을 시켜 아악(雅樂)과 향악(鄕樂)을 정리하고 편경(編磬)과 정간보(井間譜)를 만들고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을 직접 지은 것도 이러한 세종의 음악적인 재능 때문이었다.
세종은 추상적이거나 모호한 것을 싫어하고, 구체적이고 명백한 것을 좋아했다. 대외관계는 명나라에 대한 지성사대(至誠事大)를 표방했으나 맹목적인 사대가 아니고 국익에 위배되는 것에서는 독자적이고 자주적인 태도를 보였다. <<고려사>>를 편찬할 때 직서주의(直書主義)를 채택한 것이나 단군(檀君)과 기자(箕子)의 사당(祠堂)을 지은 것 등이 그 예이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