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 전쟁의 역사)]로마의 수비와 야만인 이주
- 최초 등록일
- 2005.10.30
- 최종 저작일
- 20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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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국제마케팅 강의에 주어인 레포트였는데 세계사적인 내용을 다루었습니다.
로마의 흥망성쇠를 아주 자세하고 심도있게 다루었습니다.
부디 많은 도움되시길 바랍니다.
목차
없음
본문내용
기원전 27년 아우구스투스라는 이름으로 초대 로마호마황제의 자리에 오른 옥타비아누스는 카이사르의 군사적 자질을 거의 물려받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카이사르에게 결여되어 있던 정치적 자질을 지니고 있었다. 우리는 이제 지중해의 로마 제국이 카이사르에 의해 팽창된 후 400년이 넘도록 어떻게 수비되었는지를 알아보게 될 것이다. 수비는 그 시대의 과제였지만, 로마 군대의 전투적 기질로 볼 때 수비란 전혀 달갑지 않은 것이었다. 공격적인 투혼을 죽이고 ‘마지노 콤플렉스Maginot complex`를 가져야 한다면 어떤 군대나 그런 반응을 보일 것이다. 해가 바뀜에 따라 점점 많은 야만인들이 로마 군대에 유입되었는데, 그것은 주로 인구 감소와 이탈리아인들의 군복무 기피에 따른 인력난 때문이었다. 그러한 로마 군대의 야만인화는 점차 옛 로마의 군사적 전통을 와해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그런 현상은 군단의 기율과 효율성을 파괴했고, 근본적으로 군단의 성격을 변화시켰기 때문이다. 제국은 서서히 내부에서부터 쇠퇴해갔다. 그러한 쇠퇴는, 야만 민족이 이주해오며 침략을 계속하자 더욱 가속화되어 마침내 서구에서 로마 제국은 종말을 맞고 말았다.
아우구스투스는 물려받은 로마군의 실상이 전혀 만족스럽지 않다는 것을 곧 알게 되었다. 로마군은 주로 단기 복무를 하는 개인을 다스리기 위해서, 그리고 습격과 침입을 저지하기 위해서는 기율이 잡힌 장기 복무 병력이 필요했다. 또 여러 지휘관들에게 충성하기보다는 국가에 충성하는 병사가 필요했다. 기원전 31년, 로마군은 총60개 군단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국가는 그 유지비를 다 댈 수가 없었다. 또 비록 국경이 지중해의 여러 나라에 둘러싸여 있고, 도나우 강과 라인 강을 따라, 그리고 스코틀랜드를 관통하며 길게 뻗어 있기는 했지만, 병력을 필요 이상으로 많았다. 대서양과 사하라 사막 같은 천연의 장벽은 어느 정도 서쪽과 남쪽의 방어벽 구실을 해주었다. 아우구스투스는 동쪽이라면 무력보다 외교로 더 잘 유지될 수 있다고 생각했고, 단지 북쪽에만 강격한 수비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참고 자료
전쟁의 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