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남한산성
- 최초 등록일
- 2005.11.02
- 최종 저작일
- 20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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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남한산성에 다녀왔습니다...
목차
1.남한산성을 찾은 이유
2.남한산성에서의 첫 느낌
3.성곽가는 길에 본 작은 풍경들
4.남문에서의 깨달음
5.수어장대의 화려함
6.슬픈 청량당
7.아쉬운 숭렬전
8.막걸리 한잔의 회고
본문내용
내 주위에 문화유적지가 무엇이 있을까? 가까우면서도 가보지 못한곳 남한산성을 찾았다. 난 남한산성이 병자호란의 뼈아픈 역사를 지닌 곳이라는 것 외에 알고 있는 것이 없었다. 우리역사가 반도의 지리적 위치에 있어 외적의 침입을 받은 것은 셀 수 없지 많지 않은가? 가슴아픈 사건들이지만 부정할 수 없는 것이 역사이다. 그러나 역사의 단편적인면 이외에 그 속에 녹아있는 알지 못한 역사도 많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과 가을인 만큼 산에 오르는 것 또한 기행의 즐거움을 더할 것 같아 이번 기행의 목적지로 남한산성을 선택했다.
남한산성의 역사는 삼국시대 신라의 문무왕 12년에 한산에 “주장성”을 쌓은 것으로 시작된다. 그 한산이 지금의 한강 이남의 광주․하남에 해당된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를 거쳐며 끊임없이 축조되어 왔고 변모하여 온 역사가 매우 깊은 유적지이다.
남한산성은 북한산성과 함께 도성을 지키던 남부의 산성이었다. 남한산성은 초기 백제 400년 역사의 중심무대였고, 고려시대에는 몽골군에 승전한 곳이며, 또 항일 의병운동과 3․1운동의 중심지 역할을 한 곳이다. 지금은 동․서․남문루와 장대․돈대․암문․우물․보․누 등의 방어 시설과 군사 훈련 시설 등이 있다. 이 산성의 주변 지역에는 숭렬전과 온조왕묘 등 백제 초기의 유적이 많이 분포되어 있어서, 일찍부터 온조왕 때의 성으로도 알려져 왔다.
남한산성은 수어사(守禦使) 이시백(李時白)이 축성 뒤에 처음으로 유사시에 대비할 기동훈련의 실시를 건의하여, 1636년(인조 14)에 1만 2,700명을 동원하여 훈련을 실시하였다. 그러나 그 해 12월에 막상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여러 가지 여건으로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성문을 열어 화의(和議)하고 말았다. 결국 막대한 비용과 노력을 들여서 쌓은 성이었으나 제구실을 하지 못한 뼈아픈 역사(役事)를 간직하고 있다.
산성은 크게 남문․서문․북문․동문으로 되어 성곽을 두르고 있다. 난 남문을 거쳐 수어장대․청량당․숭렬전을 답사 코스로 잡았다. 산성으로 출발하기 전 막연히 고요하고 적막한 분위기를 상상했으나 그것과는 많이 달랐다. 산성으로 가는 길엔 나무 숲이라기 보다는 빌딩숲이라고 하는 것이 적당한 표현인 듯 하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