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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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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1. 발해의 건국
1) 발해의 건국과정
고구려가 멸망한 후 많은 유민들은 전쟁을 피하여 요서 및 돌궐의 다른 지역으로 스스로 이동하거나, 강제로 요동 및 당의 내지로 옮겨 가 살게 되었다. 盧泰敦, 「高句麗 遺民史硏究」,『한우근박사정년기념사학논총』(지식산업사, 1981), pp. 85-88
당으로 옮겨간 사람들은 지배층뿐만 아니라 피지배 주민들도 상당수 있었다. 피지배주민들은 대개 당나라 말갈로 알려지면서 토착 이름을 지니고 있던 사람들로써 이들은 寶藏王을 도와 고구려 부흥운동을 모의하기도 하였는가 하면, 대조영 등이 발해를 건국할 때에는 뜻을 같이하여 공을 세우기도 하였다. 韓圭哲, 『渤海의 對外關係史』 (신서원, 1994), p. 83
삼국민의 당 축출로 인해 신성으로 쫓겨간 안동도호부는 요동을 그들의 관할지역으로 삼고 있었다. 그러나 고구려 유민들은 안동도호부의 통치에 저항하여 투쟁하였다.
참고 자료
§ 참고문헌
盧泰敦, 「高句麗 遺民史硏究」,『한우근박사정년기념사학논총』(지식산업사,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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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봉, 『발해문화연구』 (이론과실천, 1991)
사회과학원역사연구소 편, 『발해사』 (한마당,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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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圭哲, 『渤海의 對外關係史』 (신서원,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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