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고려 말에 발생하여 조선 초기에 악장을 거쳐서 발달해 온 가사는 훈민정음의 제정으로 그 창작이 활발해지며 전성기를 맞이하게 된다. 그러나 향후의 학자들은 그 발생의 근원과 장르의 구별 그리고, 주제별 내용 등에 대하여 여러 가지 학설들을 주장하며 가사는 그 명칭의 개념성에 있어 모호성을 띄게 되었다.
이에 가사에 대한 여러 가지 이설들과 위상을 알아보기 이전에 가사의 정확한 명칭에 대하여 먼저 살펴보고 명확한 개념을 확립해 둘 필요가 있어 간단히 서술해 보도록 하겠다.
목차
1. 들어가며
2. 본론
1) 가사의 명칭 논란
2) 가시의 기원설
3) 가사의 장르에 대한 이견(운문, 산문)
4) 가사문학의 위상
3. 맺으며
본문내용
위와 같이 수 많은 異說들로 논의가 되고 있는 가사에 대한 연구는 사대부 사회의 의식 구조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또한 사대부 가정의 庭訓․榮達․退休․隱遁 등의 문학적 표현이 이 가사문학에 집약되어 있기 때문에 좋은 연구사적 자료가 된다.
이 처럼 가사문학과 현전하는 가사작품들이 갖는 그 위상, 특질 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가사는 조선조에 번창한 문학이라는 것으로,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문학 장르이며, 조선조의 종말과 더불어 사라진 문학이라는 것이다. 과거도 그랬든 현재든, 미래든 가사를 짓는 사람은 있을지 모르겠으나 조선조와 같이 당시 가사가 가지고 있는 유장한 가락이나, 거기에 담겨진 자연미의 발견, 그리고 유교적 교훈과 같은 내용을 같게 하기는 어려울 것이며, 분명 당시의 내용들은 현대의 문명생활과 거리감이 존재할 것이다. 그리고 앞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조선조 내에서도 사회정세의 변천에 따라 가사도 변천되었으나, 그것이 현대에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에 사라진 것으로 볼 수 있다.
두 번째로는 작가층을 들 수 있다. 가사의 작가층은 가사를 많이 짓고, 가사를 통해 그 감상과 교훈을 노래한 조선조의 사대부이다. 당시 시대의 변천에 맞추어 작자층이 사대부층에서 평민들이나 부녀자들로 옮겨졌다 하여도 사대부들이 가사를 외면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사대부 작자층에 의하여 일반 평민이나 부녀자들이 영향을 받아 가사를 지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조선조가 붕괴되어 사대부들이 권력의 자리에서 사라졌을 때 가사도 역시 같이 사라졌다. 이 같은 관점에서 볼 때 가사는 유학적 소양을 쌓은 사대부에 의해 개척되고 발전된 문학이라고 할 수 있다.
셋째, 가사의 형식면에서는 3․4조나 4․4조를 기조로 4음보격을 이루고 있으나, 그 안에도 여러 가지 질적인 차이가 있으며 파격도 있었다. 단조롭게 느껴지면서도 내부에서 잔잔한 변화가 그 단조로움을 누르고 전체의 안정된 율조로 노래된 것이 바로 가사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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