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박형룡
- 최초 등록일
- 2005.11.21
- 최종 저작일
- 20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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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박형룡 박사에 대한 정보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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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박형룡은 1897년 3월 28일(음력) 평안북도 벽동군 운시면 운하동 220번지에서 박기수 씨의 사남 가운데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어려서부터 남달리 신학문에 대한 향학열이 뜨거웠고, 또 웅변에 재질을 가지고 있었다." 그에게 신앙을 심어준 이는 그의 어머니였다. 그의 어머니는 온유하고 겸손한 사람으로서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다. 이러한 어머니의 신앙으로부터 박형룡은 점점 기독교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기독교에 대한 이해와 관심만으로는 그의 실존을 신자화하지 못했던 것이다. 압록강변 고향에서 소년시절을 보내던 그에게 매우 귀한 운명의 기회가 주어졌다. 그의 가슴을 울리며, 그의 실존적 결단을 실현시킨 역사는 김익두 목사의 설교였다. 김 목사의 설교에 감화 감동된 박형룡 소년은 벽동교회에서 "예수 천당의 종" 최 권능(본명 최봉석) 목사로부터 세례를 받았다. 세례를 받으면서 "앞으로 목사가 되겠다"고 결심했다 한다. 1916년 3월에 평북 선천에 있는 신성중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곧이어 평양숭실전문학교에 입학하였다. 웅변력이 뛰어난 청년 박형룡은 숭실전문학교 재학 시절 전국 순회 강연회 연사로 발탁되어 목포에서 강연한 내용이 문제되어 일경에 체포되어 열달 동안 옥살이를 하기도 했다.
1920년 숭실전문학교를 우등으로 졸업한, 박형룡은 미국 유학을 꿈꾸었다. 그는 먼저 중국으로 가서 1921년 9월 중국 남경의 금륭대학 영문학과에 편입하여 학문을 연마하고 3년뒤 1923년 7월에 문학사학위를 수여받았다. 금륭대학을 졸업한 문학사 박형룡은 미국에 가서 시카고 맥코믹 신학교에서 신학 공부를 하려 했다. 그가 어려서부터 보수주의적 신앙에 젖어있으면서도 당시 자유주의적인 신학풍을 갖고 있던 맥코믹 신학교에서 공부하려했던 것은 그에게 감화를 준 여러 선교사들이 맥코믹 신학교 출신 선교사들이었으며, 그들이 한국에서 열심히 개척전도와 봉사를 하는 모습이 그에게 매우 감명깊게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감부열 선교사 모친의 친구되는 분이 그를 마중나와 프린스톤 신학교로 가서 공부하기를 끈질기게 강권하는 바람에 박형룡은 마음을 바꾸어 뉴저지주에 있는 북장로교 직영 신학교인 유서깊은 프린스톤 신학교에 입학하였다.
참고 자료
박형룡의 생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