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이자겸의 난
- 최초 등록일
- 2005.12.06
- 최종 저작일
- 20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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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이자겸의 난과 묘청의 서경천도운동내용이네요
목차
1. 이자겸의 정변과 묘청의 등장
2. 묘청의 서경 천도운동
본문내용
1. 이자겸의 정변과 묘청의 등장
고려 인종 때 외척세력가이던 이자겸이 왕위를 빼앗고자 일으킨 반란이다. 척준경의 군사력을 동원하여 일으켰다 해서 ‘이․척의 난’이라고도 한다. 고려 귀족사회는 문종대를 전후하여 자신의 정치적․경제적 세력을 확대하기 위해 상호 대립하는 양상이 심화되어갔다. 그러한 귀족세력 중에 경원 이씨는 문종부터 인종 때까지 80 여 년간 계속 외척으로서 강력한 세력을 굳혀오고 있었는데, 이자겸은 이러한 경원이씨 가문의 출신이었다. 1094년 문종의 아들인 선종이 죽고 병약하고 11세밖에 안된 어린 나의의 현종이 즉위했다. 이때 경원이씨 출신인 이자의는 자신의 여동생인 원신궁주와 선종의 사이에서 태어난 한산후를 왕으로 옹립하기 위해 거사를 도모했으나 왕이 숙부인 계림공(鷄林公:숙종)이 이자의 일파를 주살하고 중서령이 되었다가 그해 11월에 헌종의 선위를 받아 왕위에 올랐다. 숙종은 즉위후 원신궁주 이씨와 한산후를 경원으로 귀양보내는 등 왕권의 강화를 위해 노력했다. 뒤이어 즉위한 예종은 이자겸의 딸을 왕비로 들임으로써 경원이씨와 타협하는 한편, 왕권의 강화를 위해 지방의 중소세력가 출신으로 관직에 진출한 지 얼마 안된 한안인을 비롯한 신진관료들을 발탁해 주변에 포진시킴으로써 기존세력을 견제시키는 등 왕권을 어느 정도 안정시켰다.
그러나 이후 외척세력으로 재상(宰相)의 반열에 들어선 이자겸과 신진관료인 한안인 일파는 상호대립하게 되었고, 1122년(예종 17) 4월에 예종이 죽으면서 개경의 귀족사회 자체 내 분열은 더욱 심화되었다. 이자겸은 자기집에서 성장한 14세의 외손인 인종을 즉위시키는 데 성공하고 그 공으로 수태사 중서령의 최고직을 제수받았다.
참고 자료
김창현․김철웅․이정란, 고려 500년의 의문과 진실, 김영사, 2001
김정환, 반란의 시대 - 고려편, 푸른솔, 1997
정성희, 인물로 읽는 고려사, 청아출판사, 2000
이기백, 한국사 신론, 일조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