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사]한국문화사 기말고사 답안지 정리한 것(홍익대학교 정억기 교수님)
- 최초 등록일
- 2005.12.17
- 최종 저작일
- 20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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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홍익대학교 정억기 교수님 한국문화사 기말고사 답안지 정리한 것입니다
많은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다운 받으세여
목차
1. 조선의 건국에 혁명성을 부여 할 수 있을까?
2. 조선전기 불교계의 동향
3. 사화와 당쟁(훈구파, 사림파비교, 조광조의 기묘사화)
4. 임진왜란(농민층의 동향과 의병의 성격)과 이순신장군
5. 실학의 배경과 박제가의 실학사상
본문내용
고려말기의 당시 시대상황을 통해 조선 건국의 혁명성의 타당성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자.
먼저 고려 후기 사회의 지배 세력은 권문세족으로 이들은 고려 전기부터 또는 김취려장군(거란)과 채송련과 같은 무신란 이후 무인세력 가문도 있었으나 주로 역관인 조인규, 응방의 윤수, 환관 등과 같이 원의 세력을 배경으로 하여 등장하였으며 그 외에도 삼별초 진압한 김방경 장군 등이 있다.
이들은 특징은 친원파 성격이 강한 한미한 계층으로 과거보다는 음서를 활용하였기에 교양과 학식과는 거리가 멀었으며 도평의사사 등을 장악하는 등 보수적인 성격과 관료적 성향이 강하다. 또한 불법적으로 토지를 겸병하여 대토지를 소유함으로써 농민몰락하고 토지제도가 붕괴 되며 국가 재정을 악화시켰다.
또한 충렬왕이 몽고 공주와 결혼을 통해 부마국이 되고 이후 왕비가 죽음으로 충렬왕이 원으로 끌러가고 이후 왕이 된 충선왕이 개혁적 정치를 핌으로써 권문세족에 의해 원으로 가고 다시 충렬왕이 돌아오는 등 충렬왕 때부터 공민왕 때까지 왕이 빈번하게 교체됨으로써 황실의 무능과 친원세력인 권문세족의 방해가 심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또한 이 시기에 충선왕, 충목왕(정치도감), 공민왕은 측근정치를 통한 새로운 개혁기구을 통해 권문세족을 견제하였으며, 특히 공민왕은 전면변전도감을 통해 친원파를 제거, 토지개혁, 신분제 개혁, 관제복구 및 쌍성총관부 탈환등의 개혁한다, 그러나 이러한 측근정치는 정치는 하지 않고 반대세력만 제거하며 토지소유의 유혹을 벗어나지 못했기에 측근정치의 피해와 홍건족의 두차례 침입과 신돈이 제거되면서 공민왕의 개혁이 실패로 돌아가게 된다.
또한 승려들의 타락상이나 불교행사의 범람 사원경제의 확대나 사원의 고리대금업 등 불교의 폐단이 심각했다
이처럼 무신란를 시작으로 거란, 몽고, 홍건족이나 왜구(우왕 때)와 같은 내우외란으로 인해 민생은 도탄에 빠지고 국가경제는 근간이 흔들릴 정도로 황패하게 된다.
참고 자료
많은 도움이 됬으면 좋겠습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여^^"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