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고대사]국가형성기의 고구려
- 최초 등록일
- 2005.12.18
- 최종 저작일
- 20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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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머리말
2. 고구려의 역사적 배경
3. 고구려의 고분
4. 고구려의 성곽
5. 고구려의 토기
6. 맺은말
본문내용
1. 머 리 말
고구려는 기원전 1세기경에 渾江流域의 桓仁地方에서 건국하여 668년 멸망하기까지 700여년 동안 존속하였으며, 渾江流域의 桓仁地方과 鴨綠江流域의 集安地方 및 大洞江流域의 平壤으로 首都를 옮기면서 발전하였고, 南으로는 漢江流域 및 慶尙北道․忠淸道 일원까지 진출하였다. 이 오랜 시기 동안 그들이 남긴 유물 유적의 양이 방대하겠지만 안타깝게도 여러 가지 이유에서 현재 그 고고학적 연구 성과가 미비한 실정이다. 특히, 고구려의 기원에 관해서는 고대의 문헌만을 가지고 연구해야 되는 실정이니 타 분야보다 그 이견이 많은 상태이다. 이 시점에서 고분․성곽․토기 등 유물, 유적등의 연구를 병행하면 그 기원을 밝혀내는 작업이 더욱 용이하리라고 생각된다.
본 고에서는 고구려의 유물․유적을 다룸에 있어서 세가지로 나누어 보려고 한다.
첫째는 高句麗의 墓制이다.
고구려의 고분․고총은 중국 북만주 일대와 한반도 북․중부 일대에 비교적 많이 있으나 그 중 연구 조사된 것의 수는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고분․고총을 통해 고구려 초기 중심지의 이동 및 권력 구조를 이해하는 것에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둘째는 高句麗의 城郭이다.
알다시피 고구려는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대제국을 이룩하였다. 당연히 당시 성들이 많이 축조되었을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고구려의 성은 대개 산성이었는데 산성을 연구함으로써 성의 외형적인 모습뿐 아니라 그당시 주민의 생활상도 알아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셋째는 高句麗의 土器이다.
토기에 대한 연구도 지리적 정치적 제약으로 인해 그 연구성과가 미비한 상태이며 중국과 북한의 연구 성과도 전무한 실정이다. 토기 연구를 통해 당시 생활상을 알아보려 한다.
2. 高句麗의 歷史的 背景
고구려의 기원에 관한 각종 기록에 의하면 고구려는 부여에서 이주해 온 주몽 집단에 의해 건국되었다고 전한다. 『삼국사기』고구려 본기에 의하면 B.C 37년에 주몽등은 부여에서 남하해 압록강 중류 동가강 유역(卒本=桓因)에 자리잡고 일으킨 것으로 되어 있다. 李基白, 『韓國史新論(改訂版)』, 一潮閣, 1977 P36
이후 通溝지방으로 옮기면서 호전적이고 정복적인 기마민족으로 강성해지며 발전한 국가였으며 또한 중국대륙과 한반도 내의 한족 세력과 충돌하며 동해안까지 영역을 넓히며 점차 강력한 국가로 성장한 것으로 보여진다.
참고 자료
李浩官, 「고구려의 고분」,『한국사론 19』, 國史編纂委員會, 1989
李基白, 『韓國史新論(改訂版)』, 一潮閣, 1977
金元龍, 「韓國考古學槪說」,『韓國壁畵古墳』, 一志社
최종택(서울대 박물관 학예연구사), 「高句麗 考古學」, 제2기 慶北大學校 博物館 文化講座 강의노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