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고려사 열전 중에서 정몽주, 정도전 비교
- 최초 등록일
- 2006.01.05
- 최종 저작일
- 20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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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고려사 열전에서 제5장인 말기의 혁명가와 절의가 부분에서 정몽주와 정도전을 택하여 소개하고 그 둘을 비교한 레폿입니다. 교양세미나수업에서 가장 좋은 점수를 받았었고, 물론 최종 성적으로 A+를 받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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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고려사는 우리나라 고려사회를 연구하는데 가장 기본이 되는 사료이다. 이것은 고려를 타도하고 조선 왕조룰 개창한 조선왕조가 왕조의 개창을 합리화하고 조선적인 역사관에서 고려일대의 역사를 역대 왕에 대한 기사(세가), 후비, 종실, 공주와 신하 및, 효자, 열녀 등 인물들에 개한 기사(열전), 관직. 경제 등 분야에 대한 기사(지), 그리고 연표, 즉 기전체로 정리한 고려의 정사이다. 열전은 고려사의 전반적인 편찬과 같이 고려왕조를 개창한 개국주도 세력 내지 집현전 학사 등 관학파 학자들에 의하여 편찬되었다. 이에 따라 우왕과 창왕의 기사를 세가에서 서술하지 않고 열전에서 기술하였고, 고려에 절의를 다한 최영, 정몽주, 이색 등을 폄하한 기사가 많으며, 승려열전도 설정하지 않았다.
<고려사 열전>에서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두 사람을 선택하라면 정몽주와 정도전을 선택하고 싶다. 정몽주와 정도전은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는데, 공통적으로는 두 사람 모두 초기 성리학자이며 조선 초 사상 성립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것과 개혁세력이었다는 것이다. 정도전은 진보적 입장으로서 개혁을 진두지휘하였다는 것과 정몽주는 온건적 입장에서 개혁을 진두지휘하였다는 것, 그리고 한 사람은 사림파적 한 사함은 훈구파적 사상을 남겼다는 것이 차이점이라면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다.
먼저 정몽주에 대해서 알아보자. 정몽주는 우왕2년(1376) 성균대사성으로 이인임 등이 주장하는 배명친원의 외교방침을 반대하다 언양에 유배되었다가 풀려나와서 사신으로 일본 규슈의 장관에게 왜구의 단속을 청하여 승낙을 얻고 잡혀간 고려인 수백 명을 귀국시켰다. 그는 이성계의 위망이 날로 높아지자 그를 추대하려는 음모가 있음을 알고 이성계 일파를 숙청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는데, 1392년 명나라에서 들어오는 세자를 마중 나갔던 이성계가 사냥하다가 말에서 떨어져 드러눕자 그 기회에 이성계 일파를 제거하려 했으나 이를 눈치 챈 방원(이성계의 셋째 아들)의 기지로 실패하고, 이어 정세를 엿보려고 이성계를 찾아보고 귀가하던 도중 선죽교에서 방원의 부하인 조영규에게 살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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