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중세사]옹정제
- 최초 등록일
- 2006.01.11
- 최종 저작일
- 20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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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중국 청나라의 황제, 옹정제에 대해 쓴 글.
강희제의 아들이자, 건륭제의 아버지인 옹정제. 그는 청의 5대 황제이기도 했고, 많은 위대한 업적도 남기었다.
목차
1. 들어가며.
2. 미야자키 이치사다의 `옹정제`
3. 미야자키 이치사다의 `옹정제`를 읽고
본문내용
1. 들어가며
옹정제(雍正帝; 1678~1735)는 청(淸)나라의 제 5대 황제로 1722년부터 1735년까지 재위하였다. 그의 본명은 애신각라 윤진(愛新覺羅 胤禛)으로, 묘호는 세종(世宗)이었으며 시호는 헌제(憲帝)라고 하였다. 그는 강희제의 뒤를 이어 즉위하였으며, 즉위 후 형제들을 물리쳤고 여러 권신을 숙청하여 독재 권력을 확립시켰다.
중앙 관제상 기존의 내각은 형식을 중요하게 여겨 정무가 잘 처리되지 못하였는데, 별도로 황제 측근의 군기처대신(軍機處大臣)을 두었으며 이 군기처가 내각을 대신해 6부를 지배하도록 하였다. 지방 백성을 다스리는 데에도 마음을 써서, 지방대관에게 주접(奏摺)이라는 친전장에 의해 정치 실정을 보고하도록 하였고, 황제는 이것을 보고 붉은 글씨로 비평을 써서 발신인에게 반송해 지시와 훈계를 내렸다. 이것을 뒤에 편찬한 것이 『옹정주비유지(雍正硃批諭旨)』였다.
중국 군주의 특권 중에는 후계자의 지명권이 포함되는데, 이런 후계자 다툼이 바로 옹정제 전대인 강희제때 실패로써 일어나게 되자 옹정제는 태자를 세우지 않고 이른바 태자밀건법(太子密建法)을 고안해 냈다. 이는 후사의 이름을 적은 쪽지를 상자에 넣고 궁중의 정대광명(正大光明)이라고 쓴 액자 뒤에 숨겨두고 만일 천자가 지명을 하지 않고 죽은 경우에는 대신들이 입회한 가운데 상자를 열어 유지에 따라 새로운 천자를 세우는 방법으로 후대 중국의 군주들은 이러한 방식을 계속 지켜나가게 되었다고 한다.
청조의 독재군주로 알려진 옹정제에 대해서는 바로 앞서 언급한 ‘정대광명’ 이라는 액자와 군주의 태자밀건법이라는 대략적인 내용을 알고 있었다. 수업시간, 명조와 청조를 배우게 되면서 청조의 군주도 가끔 소개가 되었는데, 그때마다 황제의 묘호나 시호 등을 제대로 알지 못해 수업을 뒤따라가지 못해 애를 먹기도 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과제물을 위해 읽기 시작한 『옹정제』는 옹정제에 대한 새로운 사실은 물론이요, 머릿속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고 맴돌기만 했던 청조의 상황을 좀 더 명쾌하게 파악하는데 도움을 주게 되었다.
미야자키 이치사다 라는 학자에 의해서 쓰인 이 책을 통해 과연 내가 제대로 된 이해를 한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지 않는 것은 아니나, 책을 읽기 전 보다 읽은 후의 마음이 더욱 홀가분해 진 것은 숨길 수 없다고 생각한다.
『옹정제』의 서문에 미야자키 이치사다는 이런 표현을 한다.
참고 자료
미야자키 이치사다의 옹정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