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외교]김일성 리더십 고찰
- 최초 등록일
- 2006.01.19
- 최종 저작일
- 20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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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정치권력에 있어서 리더십 고찰은 현재 중요한 이슈가 되고 있다..
여기에서는 현 북한 김정일 체제의 모태가 되는 김일성의 리더십을 고찰해 보고자 한다.
김일성의 성장과정에 있어서 어떻게 그가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었고 해방 후 그가 집권하기까지의 과정과 6.25 후의 북한 일인집권 체제를 이룩한 과정을 조망해보고자 한다.
목차
Ⅰ. 서 론
Ⅱ 김일성의 리더쉽 고찰
1. 출생과 소년기
2. 항일투쟁기
3. 집권과정
4. 단독 지배 체제 구축
5. 주체사상
1) 주체사상의 전개과정
2) 주체사상의 기능
3) 소결론
Ⅲ 결 론
본문내용
45년 해방과 함께 항일투쟁 지도자로 모습을 드러낸 김일성은 북한의 정신적 지주이자 절대권력자로 49년 동안 집권하며 현대사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는 북한에서는 ‘위대한 수령’ ‘민족의 태양’으로 불린 반면 서방세계에서는 ‘20세기 최후의 독재자’ ‘이데올로기의 탈을 쓴 사이비 교주’로 평가절하됐다. 그는 인간의 자주성이 역사를 움직이는 동력이라는 ‘주체사상’을 만들었고, 이를 마르크스-레닌주의에서 한 단계 발전한 독자적인 사상체계라고 주장했다.
특히, 현 시점에서 북핵문제가 국내적 이슈에서 벗어난 국제적으로 최대의 관심사로 대두되고 있다. 즉 북한은 1990년대 이후로 남북관계에서 벗어나 국제사회에서도 주목받는 존재가 되고 있는 것이다. 현 북한 권력의 중심자인 김정일 국방위원장 역시 김일성의 세습적 지위를 인정받은 자로서 그만큼 김일성의 가치관이나 리더쉽에 영향을 받았으리라고 생각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북한의 현재를 제대로 읽어내고 또 거기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김일성이라는 존재에 대한 연구가 큰 의의를 갖는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가정 속에서 이제 김일성의 리더쉽에 대하여 고찰해 보도록 하겠다.
북한에서 김일성의 공식 직명은 세월의 흐름에 따라 여러 가지로 변했다. 1945년 10월에는 소련군에 의해 ‘장군’으로 소개되었고 그 후 북조선 공산당책임비서(1945년 12월), 북조선 임시인민위원회 위원장(1946년 2월), 북조선 로동당 부위원장(1946년 6월), 북조선 인민위원회 위원장(1947년 2월), 공화국 내각수상(1948년 9월), 조선로동당 위원장(1949년 6월), 조선로동당 총비서(1970년 11월), 공화국 국가주석(1972년 12월)등으로 그의 직명이 바뀌어져 왔다.
그러나 직명이 아무리 많이 바뀌어져도 북한 정권의 최고 권력자라는 그의 지위는 한번도 바뀐 적이 없다. 따라서 김일성은 북한 주민들에 의해 그의 직명으로 불리어지기 보다는 ‘위대한 수령’으로 불리어지고 있다.
만주에서 한낱 떠돌이 폭력배로 출발했던 김일성. 그가 중국인 부대의 유격대원, 소련군의 정찰대원을 거쳐 마침내 소련군의 충실한 앞잡이로서 소련군에 의해 북한 정권의 최고권력자로 만들어 졌다.
그리고 1950년대 후반부터 그는 북한의 사상, 정치, 군사, 경제, 문화 등의 모든 권한을 한손에 들어쥐 절대군주가 되었다. 지금도 그는 북한 주민들로부터 ‘위대한 수령’으로 신격화 되고 있다.
참고 자료
함성득, 대통령학. 나남출판사
이태섭, 김일성 리더십 연구, 들녁출판사
남북문제연구소 민족사 입장에서 본 김일성 정권
허동찬, 김일성 평전, 북한연구소
이택휘외, 남북한의 최고지도자, 백산서당
이극찬, 법문사, 2004, 정치학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