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박태원과 1930년대에 대한 레포트입니다.
박태원은 도시적 성향을 지닌 작가로서 1930년대에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는, 한국문학사에 깊이와 넓이를 더해준 작가입니다.
발표와 제출 을 함께 한 것이고 과목도 200점 환산해서 198점 받았습니다.
많은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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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론
Ⅱ. 박태원의 생애
Ⅲ. 1930년대의 문학
Ⅳ. 박태원과 도시세대
Ⅴ. 박태원과 구인회
ⅰ. 구인회
ⅱ 박태원의 활동
Ⅵ. 박태원의 소설
ⅰ. 소설의 내용과 의의
ⅱ. 1930년대의 박태원 소설
Ⅶ. 박태원의 문학론
ⅰ. 문장
ⅱ. 기교
ⅲ. 3인칭 서술 기법
ⅳ. 주관적 직관과 심경소설
Ⅷ. 박태원과 1930년대 문학사적 의의와 한계
Ⅸ. 결론
§ 참고문헌 §
본문내용
Ⅰ. 서론
1930년대는 일본이 만주를 강점하고 다시 중국에 진입하여 결국은 태평양 전쟁으로 확대되는 도화선의 시기여서, 식민지에 대한 억압과 수탈은 더욱 가혹해졌다. 이에 언론은 현실을 적극 반영하고자 했던 시기였다. 하지만 식민지적 완고성과 시대적 불안이 최고조에 이르렀기에 어느 때보다 경직되고 작가들에 대한 탄압과 검열이 극심하였다. 그러한 현실적 배경은, 작가로 하여금 현실에서 외면하여 순수 문학의 이름 아래 사회성이 거세된 예술성 위주의 작품 활동으로 회귀하게 하거나, 역사적 소재를 택하여 작가 의식을 상징적으로 반영하는 방법을 찾게 만들었다. 한편으로는 농촌의 현실에 눈을 돌리는 소극적 항거의 방향으로 변모하게끔 만들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박태원이 추구하였던 문학상을 알아보고자 한다. 이른바 지식인 작가의 계층, 인텔리 문학을 일으킨 계열인 그의 소설이 1930년대에게 안겨준 희망과 과제에 대해서 알아보자.
Ⅱ. 박태원의 생애
필명 몽보·구보(구보, 구보, 구보)·박태원이다. 서울 출생이며 경성제일고보, 동경의 호세이 대학 등에서 수학하였다. 1926년 《조선문단》에 시 《누님》이 당선되었으나, 소설로서의 등단은 1930년 《신생》에 단편 《수염》을 발표하면서 이루어졌다. 1933년 <구인회>에 가담한 이후 반계몽, 반계급주의문학의 입장에 서서 세태풍속을 착실하게 묘사한 《소설가 구보씨의 1일》, 《천변풍경》 등을 발표함으로써 작가로서의 위치를 굳혔다. 그의 소설에 있어 특기할 사항은, 문체와 표현기교에 있어서의 과감한 실험적 측면과, 또 시정 신변의 속물과 풍속세태를 파노라마식으로 묘사하는 소위 풍속소설의 측면이다. 이러한 특징은 그가 예술파 작가임을 말해주는 중요한 요건이다. 일제강점기 말에 발표한 《우맹》, 《골목 안》, 《성탄제》 등에도 비슷한 경향을 잘 드러내었다. 8·15광복 후에는 <조선문학가동맹>에 가담함으로써 작가의식의 전환을 꾀한 바 있고, 6·25전쟁 중 서울에 온 이태준·안회남 등을 따라 월북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이후에 지속적으로 창작 활동에 몰두하여 북한의 대표적 역사소설《갑오농민전쟁》을 발표하였다. 앞서 서술된 작품 외에 단편소설 《사흘 굶은 보름달》, 《애욕》, 《5월의 훈풍》 장편소설《태평성대》, 《군상》 등이 있다. 현대에 들어 그는 소시민적 자유주의의 사상을 펼쳐 김기림, 이태준과 더불어 기교주의로 평가 받고 있다.
참고 자료
한국현대소설론, 공종구, 국학자료원, 1994.
한국모더니즘연구, 서준섭, 일지사, 1998.
한국근대소설사연구, 양문규, 국학자료원, 1994.
<구인회>소설의 문학사적 연구, 이중재, 구학자료원, 1998.
박태원의 천변풍경 연구, 석영명, 석사학위논문, 1995.
박태원 소설 연구-천변풍경과 갑오농민전쟁을 중심으로, 오성균, 석사학위논문, 19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