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학]한국에 있어서의 가계기록(족보)의 역사와 그 해석
- 최초 등록일
- 2006.03.02
- 최종 저작일
- 20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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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대부분 씨족의 족보는 그 씨족의 공통 "조상"을 정점으로 하고 족보 작성 당시의 씨족원을 저변으로 하는 피라미드 형태로 되어있다. 이것은 서양인들이 작성하는 "나"를 기점으로 하여 조상을 찾아올라가는 것과 정반대의 형태를 띤다..
이러한 한국에 있어서의 가계기록에 대한 역사와 그에 대해 알아보도록하자.
목차
한국에 있어서의 가계기록의 역사와 그 해석
Ⅰ. 서언
Ⅱ. 개인중심으로 작성된 개별적인 가계기록
1. 가승(家乘)과 내외보(內外譜)
2. 팔고조도(八高祖圖) ,십육조도(十六祖圖), 십세보(十世譜)
1) 팔고조도(八高祖圖)
2) 십육조도(十六祖圖)
3) 십세보(十世譜)
4) 팔고조도(八高祖圖)
Ⅲ. 족보
1. 족보와 씨족
2. 족보의 역사
1) 족보의 출현과 초기족보의 특징
2) 초기족보의 역사적 의의
3) 족보의 발달
3. 족보의 허위성 문제
Ⅳ. 결 언
본문내용
Ⅰ. 서언
한국에 있어서의 가계기록(家系記錄)은 대부분 족보(族譜)를 먼저 생각한다. 족보는 개인 또는 그의 가족을 중심으로 하는 사보(薩譜)가 아니라 개인이 속하는 민족 집단 전체 또는 그 민족내의 파의 합동사보(合同薩譜)이며, 과거 한국에서 가계기록의 보존 수단으로서 쓰였다. 그러나 합동사보가 유일한 가계기록 수단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개별적가계(個別的家系)를 보존하였으며 이러한 개별적 가계기록이 후일에 족보 편찬의 기본 자료가 되었다.
개별적 가계기록이란 가승(家乘), 내외보(內外譜) 또는 팔고조도(八高祖圖)와 같은 것들을 말하며, 가승은 어느 시대나 보편적인 형태의 가계기록이었다. 내외보 팔고조도와 같은 복잡한 가계기록이 많은 사람들에 의해 작성 될 수 있었던 것은 족보의 발달이 큰 영향을 주었다. 족보가 한국에서 발달한 가계기록 가장 대표적인 것이나 합동사보로서의 족보의 역사는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다. 가계를 족보를 통해 합동으로 보존하기 시작한 것은 대체로 17세기 후반 경부터이며 각자의 민족사 입장에서 본다면 적어도 4세기, 길게는 7~8세기 후의 일이다. 15세기 중엽부터 17세기 중엽에 이르는 동안에 출현한 족보들은 합동사보의 성격을 띤 것이 아니며 개인의 가승을 주축으로 확대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