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계획]서면주변지역의 시설현황조사
- 최초 등록일
- 2006.03.08
- 최종 저작일
- 20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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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2005년 부산건축대전을 준비하면서 조사한 자료들입니다..
목차
부산명칭의 유래
부산역사 속의 건축물
서면주변의 지역조사
서면지역의 문제점
본문내용
부산(富山)이란 명칭이 기록에 처음보인 것은 고려 공민왕 17년(1368)에 강구사(講究使) 이하생(李夏生)을 대마도에 보낼 때 백미 천석(千石)을 부산포에서 반출했다는 기록에서 보입니다. 또『세종실록지리지』에는 "東萊富山浦"라 했고, 신숙주의『해동제국기』에도 "東萊之富山浦"라 했으며, 또 같은 책「三浦倭館圖」에도 "동래현부산포(東萊縣富山浦)"라고 기록해 놓고 있습니다. 이 때의 부산포는 `부자 富`자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1481년(성종 12)에 편찬되고 그 후 여러번 증보된『동국여지승람(1486)』산천조에 보면, "부산은 동평현(오늘날 당감동 근처)에 있으며 산이 가마꼴과 같으므로 이같이 이름하였는데 그 밑이 곧 부산포입니다. 항거왜호가 있는데 북쪽 현에서 거리가 21리이다."라고 하여 산 모양이 가마꼴과 같아 부산(釜山)이라고 하였다는 부산이라는 이름이 나오고, 그 후 이를 그대로 인용하여 <부산>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1. 구 부산역
1905년 1월 1일 영업을 개시하였다. 당시 남쪽 기점이 초량이어서 교통상 매우 불편하였다. 1908년에는 철도를 부산까지 연장하여 동년 4월 1일 임시 부산역사에서 철도업무를 개시하였다. 1909년 1월 8일 순종 황제의 순행이 있어 처음으로 궁정열차를 운행하였다.
건물의 평수는 370.6평에 처마 높이가 34척, 돔(Dome) 지붕의 꼭대기까지는 75척 높이에 이른다. 역사건물은 대단히 아름다운 건축으로 맞은편의 부산세관청사와 함께 부산의 대표적인 건축물이었다.
건물은 철저한 서구식 건축기법에 따른 붉은 벽돌 건물로서 외관 장식은 벽돌 벽의 상반부에 화강암으로 세 겹의 테두리를 둘렀고, 처마 밑에는 벽돌과 화강암을 엇갈린 사라센 계통의 건축물을 연상시키는 르네상스 양식 건물이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