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능허대 답사기
- 최초 등록일
- 2006.04.02
- 최종 저작일
- 20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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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 능허대(인천 광역시 기념물 제 8호)
■ 능허대 이름의 유래
■ 능허대의 기암전설
■ 지금의 능허대
■ 고 찰
본문내용
■ 능허대(인천 광역시 기념물 제 8호)
능허대는 백제가 동진과 통교를 시작한 근초고왕 27년(서기372년)부터 웅진으로 남천한 개로왕 21년(서기475년)까지 중국으로 내왕하는 사신들이 출발하던 나루터로서 능허대밑의 한나루에서 배를 띄웠다.
당시 백제는 고구려와 적대 관계에 놓여 있어 육로가 막혀 버렸기 때문에 이 곳에서 배를 띄워 산둥반도와 등주 내주에 도달하였다고 한다.
당시 중국이 남북조로 갈려서 대립하고 있었기 때문에 남북으로 대립하고 있던 백제는 주로 남조와 통교하고 고구려는 북조와 통교하였다. 당시 서해안에서 중국으로 가는 가장 안전한 뱃길은 이곳 한나루에서 덕적도를 거쳐 산둥반도로 가는 길이었다. 반대로 중국 사신들도 이곳을 통해 우리 땅으로 들어왔다. 삼국시대부터 시작된 능허대 중국행은 고려를 거쳐 조선조 광해군 때까지 이어진다
근래 능허대는 주변의 매립되어 주택지로 조성되고 앞으로는 해안도로가 있어 옛모습을 찾아 볼 수 없게 되었으므로 1988년 주변에 연못등 공원으로 조성되었다.
과거에는 송도 쪽에서 청량산 자락이 서북쪽 바다, 즉 현재 채석장이 있는 산 쪽으로 뻗어 반도형 구릉을 형성하고 있었는데 이 구릉 끝의 조그만 봉우리가 능허대다. 그리고 이 구릉 동쪽, 즉 송도역 쪽으로 하나의 조그만 포구가 형성되어 있었는데 이 포구가 곧 대진입니다. 이 포구 입구에 해당하는 곳에는 `소둑`이라는 능허대에서 뻗은 둑이 있어 방파제 구실을 하다.
사신들이 바람 때를 기다리던 곳이 능허대라고 하면 배에 오른 곳이 바로 능허대 밑의 대진이다. 그러므로 어느 책에는 사신이 떠난 곳을 능허대라고 하고, 또 어느 책에서는 대진이라고 한 것이 이 때문이다.
참고 자료
능허대 안내문
제물포고등학교 총동창회 http://www.jegonet.com/
인천테마학습 http://cyber.edukor.org/hyangto/12_education/3_tema.htm
인천사랑 http://myhome.edunet4u.net/iloveu/nunghedae.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