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문]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소개글

김영하의 소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의 감상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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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이 책은 10년 전 우리 문단에 충격을 던져준 문제작이다. 제목은 종종 들어서 이런 책이 있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세부 내용과 영화화 되었다는 사실은 모르고 있었다. 첫째로 놀란 것은 이 작품이 1996년에 씌어졌다는 것이다. 이제는 문학 작품이나 영화에서 ‘자살 사이트’라는 것이 진부한 소재가 되어버렸지만 10년 전에는 ‘자살을 도와주는 사람’이라는 개념은 매우 생소했을 것이다. 마치 예언이라도 하는 것처럼 요즘 실제로 인터넷을 통해 자살을 조장하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소설을 읽으면서, 이 작품이 액자소설 형태라는 것은 미리 알고 있었지만 읽는 도중 헷갈렸다. 내러티브가 화자(나)의 것인지 아니면, 그가 작성한 파일 내에서의 전지적 작가의 것인지 헷갈렸기 때문이다. 특히 2장 유디트와 4장 미미에서 그랬다. 1장에서 신이 되는 방법에는 작가가 되거나 누군가 죽도록 도와주는 일이라는 말이 작품 내내 머릿속을 지배했다. 그래서 2, 4장을 읽으며 그런 느낌을 받은 것 같다.

라캉의 이론에 따르면 사람은 무언가 열심히 노력해서 이루고 나도 아직 덜 성취한 것 같고, 약간 허무한 감정이 생기는데 그것이 ‘잉여욕망(혹은 잉여쾌락)’ 이라고 한다. 사람은 그 잉여 욕망에 의해 살아간다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유디트나 미미는 잉여 욕망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자신의 본질이 타자화되는 것에 엄청난 혐오를 느끼고 있다. 작품 내에서 그려진 바로는 미미는 그 혐오를 감지하고 있지만 유디트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미미의 그러한 혐오감은 C와의 작업에서 잘 드러난다. 미미는 C가 비디오 찍는 것을 허락하지만 얼마후 곧 그 비디오테이프를 돌려달라고 하는 부분이 그것이다.
유디트는 철저히 현재에 머무는 인간형이다.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현재밖에 없다. 이것을 어떠한 메타포로 받아들여야 할까. 나는 ‘유디트’를 소위 현대인 혹은 도시인들의 인간상과 정반대되는 캐릭터로 비판 내지는 조소의 은유를 담은 것이라 생각했다. 언제나 과거에 얽매여 있고 지나치게 미래를 불안해하며 살아가는, 현재에서는 단 1초도 행복할 수 없는 도시생활자들. 그들과 유디트는 완전히 대치되는 인간형이다. 이러한 도시에서 유디트는 벗어나고 싶어 한다. 그녀가 원하는 곳은 북극이다. 과거의 속박과 미래의 불안, 현재의 불만도 없는 광활하고 원시적인 자연상태를 원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미미와 유디트는 다른 듯하지만 작품에서 나오듯이 닮아 있다. 외모가 아니라 그들의 삶의 방식과 죽게 되는 이유가 닮은 것이다. 유디트는 살면서 한 번도 자기 뜻대로 산 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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