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문]미륵사지를 다녀와서
- 최초 등록일
- 2006.04.24
- 최종 저작일
- 20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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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백제의 유물 미륵사지를 다녀와서 쓴 감상문입니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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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먼저 미륵사지석탑에 대해 설명을 하면 미륵사지의 서석탑은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석탑이며 현재 국보 제11호로 지정이 되어 있다. 지금은 6층만이 남아 있지만 원래는 9층의 규모였다 한다. 한때 7층 설이 주장되기도 하였으나 탑의 비례와 주변에서 발견된 노반(露盤)으로 보아 9층이라는 설이 지배적이다. 탑의 형태는 일제시대(1915년) 보수공사를 핑계로 시멘트로 덧발라 놓아 흉측하게 보이기도 한다. 이 미륵사석탑(서석탑)이 목탑형식의 양식을 지니고 있어 우리나라 석탑의 발생의 기원으로 보는 시각도 적지 않은데 추녀의 살짝 올라간 부분이며 기둥의 배흘림 기법 등은 목탑을 꼭 닮았다. 천년을 견뎌 온 서석탑에서 동쪽으로 바라보면 동석탑이 있다. 1993년에 18억원이라는 어마어마한 돈을 투입해 복원한 동석탑으로 남아 있는 서석탑과 발굴 조사 때 발견된 상륜부 노반을 토대로 컴퓨터로 엄밀히 계산하여 복원해 내었다고 한다.
미륵사지에 도착하여 처음 발걸음을 옮긴 곳은 유물전시관으로 지금까지 5번 이상 미륵사지에 다녀왔음에도 불구하고 유물전시관에는 이번에 처음으로 들어가 보았다. 전시관 안에는 1980년에서부터 1995년까지 15년 간 실시한 미륵사지의 발굴 유물 400여 점과 함께 옛 미륵사의 복원 모습 등이 전시되어 있었다. 솔직히 처음 들어갈 때는 여기에서 유물이 출토되긴 했을까 하는 마음으로 들어갔는데 생각보다 많은 유물의 양에 놀라고, 그 유물들의 아름다움에 또 한번 놀라게 되었다. 그리고 수업시간에 배웠던 가람양식이나 탑의 모양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관리하시는 분께 부탁하여 몇 장의 사진을 찍을 수 있었는데 어렴풋이 알고 있던 미륵사지 창건 배경에 대해서 자세히 알게 되었으며 수업시간에 배웠던 황룡사와 비교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백제 최대의 가람인 미륵사의 창건에 대해서는 삼국유사에 기록되어 있다. 어려서부터 d위인전이나 텔레비전을 통해 알고 있는 서동요 이야기가 미륵사지의 창건설화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는 했지만 그 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이번 기회에 알게 되었다. 그 내용을 소개하자면 삼국유사의 기록은 미륵사 인근 오금산(현재 익산토성, 익산 쌍릉이 자리하고 있는 곳)에서 마를 캐며 홀어머니와 살던 맛동이 신라 선화공주와 혼인하는 서동설화와 미륵사 창건설화로 되어 있다. 선화공주와 결혼한 후 왕이 된 맛동, 즉 무왕이 왕비와 더불어 용화산(현재의 미륵산)에 있는 사자사로 지명법사를 찾아가던 중 못 속에서 미륵삼존이 출현하여 미륵사를 창건하게 되었는데 미륵삼존을 위하여 전, 탑, 낭무를 세 곳에 세웠다고 한다. 미륵사 창건에 대한 삼국유사의 기록은 발굴조사 결과 못을 메운 흙이 산 흙이라는 점이나 가람이 3원으로 구성된 것 등에서 사실을 전하는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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