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여주 고달사지
- 최초 등록일
- 2006.05.05
- 최종 저작일
- 20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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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고달사지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들,
목차
1. 소개 및 창건배경과 설화
2. 입지 및 지리적 환경
3. 가람배치
4. 고달사지내 석조물
5. 고찰
본문내용
1. 소개 및 창건배경과 설화
여주 고달사지는 경기도 여주군 북내면 상교리 411-1번지 일대 약 12,000여평에 달하는 넓은 대지에 위치한다. 사역 내에는 국보 제4호로 지정된 고달사지 부도를 비롯하여 고달사지 원종대사혜진탑비 귀부 및 이수(보물 제6호), 고달사지 원종대사혜진탑(보물 제7호), 고달사지 석조대좌(보물 제8호)가 있으며, 현재 경복궁에 이전했다가 다시 국립 중앙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고달사지 쌍사자석등(보물 제282호)도 1959년에 고달사지에서 이전된 것이다. 이처럼 넓은 사찰 규모와 사역 내에 남아있는 다수의 국보급 문화재는 고달사지가 가지는 높은 위상을 말해주며, 1993년에 사적 제382호로 지정되었다. 문헌사, 고고학, 불교사, 건축사, 미술사 등 관련 학계에서도 고달사지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다.
도의 경지를 통달한다는 뜻의 고달사는 경덕왕 23년에 창건되었다는 기록만 있을뿐, 누가 창건했으며, 어느 때 폐사 되었는지 남아있는 기록이 없지만 고달사를 거쳐 간 선사들의 행적이 기록된 비문 및 문헌자료를 통하여 고달사의 연혁과 불교 사상적 배경에 대한 어느 정도의 추정은 가능하다. 기록에 의하면 고달사는 구산선문 중 하나인 봉림산문의 개조로 알려진 원감화상 현욱이 도당유학을 마치고 귀국하여 혜목산 고달사에 주석하였던 9세기 무렵 이미 사찰로서 운영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원종대사 찬유가 중국에서 돌아온 10세기 초에 다시 기록이 나타나는데, 원종대사는 고려 초기에 국사의 예우를 받으며 활약한 승려로서, 고려 광종대의 불교 교단의 정비와 사상의 통일에서 일정한 역할을 담당하였던 법안종 광종 때에 도입 되었으며 교선일치를 내세우는 중국 선종의 일파로서 균여를 내세워 화엄종을 중심으로 교종을 통합하려던 움직임과 함게 뒷날 전제정치 성립에 이바지할 수 있는 사상적 요소를 내포하고 있던 종파.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