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근대사]동학 농민 운동
- 최초 등록일
- 2006.05.09
- 최종 저작일
- 20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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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19세기의 조선사회는 민중봉기에 의해 중세사회가 해체되는 시기이다. 아래로부터 민중의 새로운 동력에 의해 낡은 체제가 부정되고 극복되는 과정이었다. 경제상의 변화와 더불어 성장한 일부 민중이 자신들에 합당한 사회적 위상을 요구하였고 궁극적으로 그러한 요구가 충실히 관철될 수 있는 새로운 사회를 스스로 건설해내고자 했던 것이다.
1984년의 동학농민운동은 기존의 낡은 사회를 극복하고 이를 대체할 새로운 사회를 준비하고 모색하는 운동이었다. 조선 봉건사회를 마무리 짓기 위한 과정이었다. 따라서 역사변동기의 근대변혁운동의 흐름에 대해 정리, 농민운동에 대해 검토함으로써 한국사회의 올바른 발전 방향에 대해 생각해 보기로 하자.
목차
1. 머리말
2. 중세사회 농민항쟁의 특성
3. 한국근대의 변혁운동
4. 동학농민운동의 단계
⑴ 동학농민운동의 전초단계
⑵ 동학농민운동의 초기단계
⑶ 동학농민운동의 본격단계
⑷ 동학농민운동의 반봉건, 반외세 지향
5. 동학농민운동의 의의와 한계
6. 맺음말
본문내용
19세기 조선사회에 부과되었던 역사적 과제를 해결하는 임무는 끝내 민주의 몫으로 남았다. 민중은 이런 역사적 요구에 따라 농민운동을 준비하였으며 1894년의 봉기는 그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다. 비록 농민군은 그 전쟁에서 승리하지는 못하였지만 한국근대사에 대단히 큰 영향을 미쳤고 중요한 의미를 남겼다.
첫째, 동학농민운동은 조선 후기이래. 지속적으로 전개해온 반봉건 농민항쟁의 총결이며 사회혁명을 지향한 농민운동이었다. 당시 봉기에 나선 농민들은 봉건지배세력과 항전하기 위하여 사전에 필요한 일들을 준비하고 조직을 갖추었다. 조직적 연계를 통하여 국지적이고 분산적이었던 그동안의 한계를 극복함으로써 광범위한 지역에서 농민군을 동원할 수 있었다. 이들 농민군은 봉건체제의 전면적인 개혁을 요구하면서 중앙정부를 상대로 무력투쟁을 전개하였다. 이는 농민층이 봉건지배층과의 계급투쟁을 통해 사회혁명을 추구한 농민운동이었다.
농민군이 민란단계로부터 발전하여 혁명적인 농민운동을 수행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밑바탕에 기층 민중의 사회․경제적 성장과 그에 따른 의식의 변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근대사회는 중세사회와 달리 기층 민중이 역사의 주체로 등장하는 시기이며 동학농민운동은 한국사회의 민중이 그러한 근대사회를 열어가기 위하여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따라서 이 농민운동은 반봉건 농민항쟁의 귀결인 동시에 역사의 진보를 향한 근 대 변혁운동의 시작이라는 의미도 지니고 있다.
둘째, 동학농민운동은 봉건 수구정권의 붕괴를 가져와 개화파정권의 성립을 가능하게 하였고 중세사회의 봉건적 신분제와 지주제, 그리고 수취체제를 해체시킴으로써 부르주아 개혁을 추진할 수 있는 역사적 기반을 조성하였다. 곧 이 농민운동은 중세사회의 낡은 체제를 무너뜨리는 최후의 일격인 셈이다. 조선 중세사회는 신분제와 지주제를 두 축으로 하여 유지되어 왔다. 농민운동은 이 가운데 반상의 차별을 중심으로 유지된 신분제를 붕괴시키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물론 조선후기 이래 신분제는 크게 동요해왔다. 그러나 신분제의 기본 틀은 그대로 유지되었다. 농민운동은 그 틀을 직접적으로 깨부수는 역할을 하였던 것이다.
참고 자료
* 안병욱, 한국역사연구회,「농민전쟁의 역사적 위치」『1894년농민전쟁연구5』, 역사비평사, 1997
* 이이화, 「동학농민전재의 역사적 의미」,『백제문화 23』,1994
* 박영석, 「동학농민혁명의 역사적 의의」,『호남문화연구 23』,1995
* 동학농민혁명과 광주․전남. 이상식. 광주․전남 동학농민혁명 100주년사업추진위 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