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근대사]위정척사 사상
- 최초 등록일
- 2006.05.09
- 최종 저작일
- 20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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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19세기 후기는 국내의 전통적 봉건적 사회관계가 그 모순을 크게 드러내면서 해체단계로 직면해 가고 있었다. 동시에 오래 자본주의 내지 제국주의의 식민침략이 다가들고 있는 시기였다. 이 시기의 주요한 역사적 과제는 그럼으로 국내의 봉건적 사회의 제 모순을 극복하는 일과 외래 자본주의의 침략세력을 막아내는 일의 두 가지로 집약될 수 있다.
이 시기에 있어서 이러한 과제의 해결을 위한, 드러난 사회운동으로서는 다음의 세 가지를 들 수 있다. 즉 민중운동, 개화운동, 그리고 척사위정운동이 그것이었다. 여기서 이 세 가지 운동 중 위정척사 운동의 주도사상 이였던 위정척사 사상에 대해 고찰해 보자.
목차
1. 머리말
2. 위정척사 사상의 의미
3. 위정척사 사상의 전개
4. 위정척사 사상의 연구
5. 위정척사 사상의 검토
본문내용
위정척사 사상에 있어서 옹호하고자 하였던 「正」은 전통적 유교적 가치질서였으며, 배쳑해야 할 「邪」는 그것과는 다른 이질적인 가치질서, 특히 서양세력 및 그 사상이었다.
이미 전통적 유교적 가치질서의 옹호와 이단에 대한 배척은 연원적으로 보아 이미 선봉유학에서부터 나타나고 있었다. 그러나 유학의 이러한 측면이 이론적으로 더욱 체계화된 것은 주자학에 와서의 일이었다. 주자학적 가치질서는 화이론 정통론 명분론을 세계관적 차원으로까지 이론화 체계화하기에 이르렀으며, 이는 조선왕조의 지배이념으로 수용되었다. 그 가치질서는 중화를 높이고 이적을 물리친다는 것이며, 유학의 정통을 받들고 이단을 배척해야 한다는 것이며, 인간은 선천적으로 타고나며 사회적으로 규정된 분,즉 명분에 따라야 한다는 봉건적 관념론의 질서였다.
여기 말하는 위정척사 사상은 보편적으로 곧 이와 같은 주자학적 관념론의 가치질서에 입각하고 있는바, 더 구체적으로는 조선왕조 말기에 있어서 지배신분으로서의 주자학적 유림이 서양 세력의 도전에 대응하여 펼쳐낸 자기 보존의 보수적 논리였다 할 것이다.
참고 자료
김영태,『한국학연구입문』, 지식산업사,1981
홍순영, 『한말의 민족사상』, 탐구당, 1988
여대덕, 「개항전기 위정척사탐구 1860 -1870년대 화서 이항로계의 척양, 쳑왜론을 중심으로」 고려대학교 교육대학원, 19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