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학]대추리와 공공성의 관계
- 최초 등록일
- 2006.05.17
- 최종 저작일
- 2006.05
- 3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000원
소개글
◎ 대추리 사건의 개요
대추리와 도두리는 경기도 평택에 위치한 마을로, 인근에 캠프 험프리라는 미군기지를 두고 있다.
농경지 바로 옆에 둘러쳐진 철조망과 낮게 나는 비행기 소리가 그곳의 일상에 맴도는 긴장감을 실감케 한다.
대추리는 본래 일제시대부터 있던 군사기지 안의 한 마을이었으나, 1952년의 미군기지 신설로 강제추방된 주민들이 인근 땅과 갯벌을 개간하여 현재의 위치로 옮겨왔다.
한 번의 뼈아픈 추방을 경험한 마을이지만,2003년의 35차 한미연례안보협의회는 현재의 대추리 역시 강제이주 대상으로 삼는 결정을 내리기에 이른다.
목차
◎ 대추리 사건의 개요
◎ 대추리 사건과 공공성의 관계에 대한 나의견해
본문내용
◎ 대추리 사건의 개요
대추리와 도두리는 경기도 평택에 위치한 마을로, 인근에 캠프 험프리라는 미군기지를 두고 있다.
농경지 바로 옆에 둘러쳐진 철조망과 낮게 나는 비행기 소리가 그곳의 일상에 맴도는 긴장감을 실감케 한다.
대추리는 본래 일제시대부터 있던 군사기지 안의 한 마을이었으나, 1952년의 미군기지 신설로 강제추방된 주민들이 인근 땅과 갯벌을 개간하여 현재의 위치로 옮겨왔다.
한 번의 뼈아픈 추방을 경험한 마을이지만,2003년의 35차 한미연례안보협의회는 현재의 대추리 역시 강제이주 대상으로 삼는 결정을 내리기에 이른다.
용산 미군기지가 평택으로 이전하기로 결정되었고, 미군이 주둔국의 방위군을 넘어 아시아 지역군대의 위상을 갖기로 협의됨에 따라 기지확장이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2005년 12월에는 중앙토지수용위원회가 강제토지수용을 결정했다.
주민 241명은 이 결정에 대해 이의신청서를 제출했고 현재까지 마을에 머무르며 떠나기를 거부하고 있다.
2006년 4월에는 농수로를 끊기 위해 정부측의 중장비 동원과 무력행사가 이루어져
많은 주민들이 입원치료를 요하는 중상해를 입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기본 생존을 위한 재산마저 일체 박탈당한 채 무자비하게 추방된 과거를 갖고 있는 대추리 주민들의 각오는 남다르다. 당시 정부에서 지급되었던 물품이란, 두 집에 하나씩 제공되는 천막 1동, 보리쌀 한 가마, 목재 두세 지게 뿐이었다고 한다.
변변한 바람막이도 없이 맨땅에 살며 갯벌을 막아 땅을 일구어야 했기에, 찬 바닥에서 자식들을 얼려죽이고 굶겨죽여야 했던 치유될 수 없는 상처를 지니고 있다.
군사논리에 의한 참혹한 삶의 유린을 몸소 경험한 것이다.
지난 4월 23일로 주민들의 투쟁은 600일을 맞았다.
많은 활동가들이 마을에 함께 거주하며 싸우고 있고, 문화예술인들 역시 큰 힘을 보태 왔다.
마을 곳곳의 담벼락에 아름다운 벽시와 벽화들이 그려져 있으며,
문화재급의 조형물과 주민들이 손수 만든 솟대가 밭 군데군데 솟아 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