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최의팔 목사, 서울 외국인 노동자센터
- 최초 등록일
- 2006.06.01
- 최종 저작일
- 20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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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외국인노동자의 아버지 최의팔 목사님에 대해서 기독교적 입장에서 접근한 과제입니다. 최의팔 목사님과 서울 외국인 노동자 센터, 이주 노동자 문제 등을 토대로 작성하였습니다. 결론 부분에서는 인터넷과 다른학생들과 차별화하기 위해 의견을 독창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적정 분량과 창의적인 내용으로 A+받은 과제입니다.
목차
최의팔 목사님은?
외노공대위 노숙단식농성단 10명 강제 연행
서울 외국인 노동자 센터
☞센터에서 하는 일과 연혁
☞센터설립목적
☞센터중요연혁
최근 노동자 문제의 쟁점과 나아갈 방향
☞구체적 피해 상황
☞정부의 강제추방정책에 대한 최의팔 목사의 견해
☞이주노동자 강제추방과 고용허가제의 문제점
☞나아갈 방향
결론
본문내용
최의팔 목사님은?
96년부터 현재까지 서울외국인노동자센터 소장을 역임하고 있는 최 목사는 국회 앞에서의 무기한 단식 농성, 경찰서로의 연행 등 어려움 속에도 그의 신념을 꺾지 않으며, 꿋꿋이 외국인노동자들의 인권을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그 결과로 지난 8월에는 고용허가제를 국회에서 통과시키는 쾌거를 이룩했습니다.
최 목사는 고등학교를 졸업할 시 크리스천으로서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어 서울대 사회학과를 입학했다고 합니다. 그 뒤, 군대를 다녀와서 바로 크리스찬 신문사에 입사했습니다.
이 무렵 최 목사는 신문을 보다 잘 만들기 위해 신학을 좀더 잘 알아야겠다는 생각으로 한신대학원에서 신학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이후 88년에는 독일교회의 장학금을 받아 부부가 함께 3년간 독일 유학을 떠났습니다. (현재 부인 한국염 목사는 여신학자협의회에서 활동 중입니다.)
그러나 최 목사는 박사 학위 취득을 눈앞에 두고 낮은 자의 삶을 살기로 결정, 아내를 설득해 91년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후 최 목사는 92년 1월부터 97년 5월까지 청암교회 3대 목사로 시무하면서 청암교회와 성도들을 위해 섬김의 삶을 살았습니다.
최 목사가 본격적으로 외국인노동자를 위한 활동에 뛰어든게 된 것에는 김해성 목사(외국인노동자·중국동포의 집)의 역할이 컸습니다. 1996년 `성남 외국인노동자의 집`에서 출입국관리소 직원들이 외국인노동자를 강제로 데려가는 것을 막던 김해성 목사와 양혜우 집사가 공무집행방해죄로 구속되자, 최 목사가 위원장을 맡고 있던NCC 도시농촌선교위원회에서는 공동대책위원회를 꾸려 이들을 돕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마침 그 때 1년간이나 월급을 받지 못하던 중국인 근로자 8명이 본국 송환을 피해 청암교회로 피신해 들어오면서, 최 목사는 외국인노동자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게 됐습니다.
그 이후로 최 목사는 기장 외국인노동자선교협의회 회장, 외국인노동자 의료공제회 운영위원장, 선한이웃클리닉 운영위원, 외국인노동자대책협의회 공동대표 등을 역임하면서 외국인노동자들의 고락을 함께 나누는 아버지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언젠가 최 목사는 교회 쉼터에 들어온 한 외국인노동자가 술을 마시지 못하게 해도, 자꾸 술을 마셔 내좇은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며칠 뒤, 이 외국인노동자는 길거리에서 죽은 채로 발견됐습니다. 이 때 최 목사의 외국인노동자를 위한 일생에 있어 가장 어려운 순간이었다고 말합니다.
참고 자료
최의팔 목사님 관련 서적들
서울 외국인 노동자 센터
http://ijunodong.prok.org
http://cafe.daum.net/migrantworke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