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기자와 단군에 관한 역사 인식의 변천
- 최초 등록일
- 2006.06.01
- 최종 저작일
- 20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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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기자와 단군에 관한 역사 인식의 변천을 세기 별로
자세히 다룬 리포트 입니다.
목차
Ⅰ.서론
Ⅱ.단군에 대한 역사 인식의 변천
1. 고려시대 - 지역 시조신이자 자연 수호신으로서의 단군 사당
2. 조선 전기 - 우리 역사공동체를 출발시킨 천명을 받은 시조로서의 단군 사당
3. 조선 후기 - 조선 고유문화의 영웅이자 신교 창시자로서의 단군 사당
4. 민족해방투쟁기 - 단군을 민족신으로 모신 대종교의 창립
Ⅲ.기자조선에 대한 역사 인식의 변천
1. 고려시대 사서의 인식
2. 15세기 사서의 인식
3. 16세기 사서의 인식
4. 17세기 전반적 (임란후)사서의 인식
5. 17세기 후반기(호란후) 사서의 인식
6. 18세기 사서의 인식
7. 19세기 전반기 사서의 인식
8.한말 사서의 인식
Ⅳ.18세기 안정복의 기자 인식론
1. 안정복의 기자에 대한 인식
1) 기자의 행적
2) 홍범
3) 정전
2. 기자 중심의 정통론
1) 상고사의 정통론
2) 한국사의 정통론
Ⅴ.맺음말
본문내용
Ⅰ.서론
역사란 기록된 사실인 객관적인 면과 역사가가 재해석하는 주관적인 면을 총칭한다. 역사가의 역사인식에 따라 역사는 너무나 판이하게 달라 질 수 있는 것이다. 역사적 사실은 객관적인 사실로써 고정되어 머무는 것이 아니라 후세 사람들에 의해 새롭게 형성되어 나타나는 역사적 산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 연구의 중대함이 여기서 비롯되는 것이고 역사가의 역사 연구에 임하는 태도도 아주 중요하겠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 민족에 역사의 시작인 고조선을 어떻게 바라 볼 것이며, 앞으로 단군과 기자에 대한 연구 방향이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에 대한 견해를 밝히고자 한다.
단군과 기자는 우리의 역사 속에서 재해석되기를 반복하여 여러 형태로 나타나고 있고 각 시대에 따라 달리 인식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여 바로 이러한 문제 인식 속에서 단군과 기자에 대한 역사적 인식의 변화를 알아보고자 한다.
3. 16세기 사서의 인식
16세기는 정치이념으로서 성리학문의 실력과 사림파의 주도로 하는 시기이다. 그런데 이 시기에는 사찬사서만이 모여져서 박상의 ‘동국사략(東國史略)’과 아동교육용으로 박세부의 ‘동몽선습(童蒙先習)’이 남아있다. 기자조선을 소개하는 저술인 이이의 ‘기자실기’ 및 윤두수의 ‘기자지(箕子志)’가 나와서 이 시기 기자숭봉의 열도(熱度)를 설명해주고 있다. 이 때가 되면 사대질서를 존중하는 입장이 부정되고 도덕의 측면이 존중되는 ‘피지조선인봉(避之朝鮮因封)’ 설로 통일되어지는 것이 특징이다.
‘동국사략(東國史略)’은 이 시대의 대표적 사서로 평가되는데 ‘솔중국인오천(率中國人五千)’을 사서로서는 처음으로 인정함으로써 조선내 중화문화의 폭과 깊이를 강조하고 있다.
‘동몽선습(童蒙先習)’은 기자조선의 논리, 도덕을 강조하는 사림의 입장을 잘 반영하고 있으니 민족적 측면보다는 중화문화적(中華文化的) 측면을 더 강조하는 역사의식의 표현이다.
윤두수의 ‘기자지(箕子志)’는 기자에 대한 방대한 관계 자료를 뽑아 모은 자료집의 성격으로서 이이가 ‘기자실기(基子實記)’로서 정리, 체계화하였다. 윤두수는 절의를 특히 높이고 있고, 국내 왕도정치의 구현자로서 기자를 숭봉(崇奉)하는 당시의 분의기를 잘 표현해 주고 있다. 이 시기의 사서들은 성리문화가 강조되면서도 또 다른 국내의 민간신앙적 문화의 맥이 나타나 단군조선이 동등하게 존중된다던지, 또 당시의 사림문화의 폭과 내용이 단순하거나 일원적이지 않다는 점을 나타내는 것으로써 주목 할 필요가 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