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상]원효 집중 탐구
- 최초 등록일
- 2006.06.03
- 최종 저작일
- 2004.08
- 37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2,000원
![할인쿠폰받기](/images/v4/document/ico_det_coupon.gif)
소개글
한국사상 과제로
원효스님에 대한 조사 문서입니다.
목차
1. 원효대사의 생애
* 참고 자료 *
원효대사의 생애를 도표로 정리
2. 원효대사 의 사상
* 참고 자료*
원효대사의 중심사상
3. 원효대사의 업적
4. 원효대사의 설화
설화1) - 척판암
설화2) - 해골물을 마시다
설화3) - 태종춘추공(일부)
설화4) - 원효불기(元曉不羈)
설화5) - 사복불언(蛇福不言 - 말 안하는 사복)
설화6) - 낭지승운(朗智乘雲) 보현수(普賢樹)
설화7) - 수미암의 원효와 영랑
설화8) - 광덕과 엄장
설화9) - 부산 동래구 금정산 원효대
설화10) - 원효스님과 혜공스님
설화11) - 주장자로 샘을 뚫다
설화12) - 단석산의 천탑암
설화13) - 호로병의 신비
5. 원효대사의 저술목록
본문내용
이름 그대로 민족의 첫새벽을 열어간 원효는 신라 진평왕 39년(617)에 압량군 불지촌(현 경산군 압량면 신월동)에서 태어났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그의 어머니가 원효를 잉태할 때 유성이 품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었으며, 그를 낳을 때는 오색의 구름이 땅을 덮었다고 한다. 원효의 아명은 서동(誓幢)이라 하였다. 서당은 `첫새벽`을 뜻하는데 그의 의미 그대로 비단 한국의 불교사상만이 아니라 철학사상 일반에 있어서도 큰 새벽을 연 밝은 별이었다.
<송고승전>에서는 원효가 일찍이 나이 십세 무렵에 출가하여 스승을 따라 학업을 배웠다고 한다. 그러나 태어나면서부터 남달리 영특했던 그에게 일정한 스승은 따로 없었다. 불교가 공인된 지 100년이 지나던 이무렵 신라에는 적지 않은 고승들이 배출되어 있었다. 원효가 그들을 찾아 배우고 물었지만, 뒷날 佛法의 깊은 뜻을 깨달음에 있어서는 특정한 스승에 의존하지 않았던 것이다.
젊은 날의 원효에 대한 자료는 거의 없다. 그러나 그는 불교학은 물론 유가(儒家)와 도가자(道家者)에 이르기까지 광범한 학문을 닦는 한편 수행자로서 간절하고 피나는 고행을 다했던 것 같다. 그가 남긴 다양한 저술들에서 그 편린들을 찾아볼 수 있다.
원효의 행석 가운데서 각별히 눈길을 끄는 대목이 있다. 두 차례에 걸쳐 입당(入唐) 유학을 시도했던 그가 문득 스스로 크게 깨닫고 발길을 돌린 일이 그것이다. 원효는 34세때 당에 유학하기 위해 의상(義湘)과 함께 압록강을 건너 요동까지 갔다가 그곳 순라꾼에게 잡혀 뜻을 이루지 못하고 되돌아 왔다. 45세에 다시 역시 의상과 함께 이번에는 해로(海路)로 해서 당(唐)으로 가기 위해 백제 땅이었던 당주계(唐州界)로 향하였다. 항구에 당도했을 때 이미 어둠이 깔리고 갑자기 거친 비바람을 만나 한 땅막에서 자게 되었다. 아침에 깨어났을 때 그곳은 땅막이 아닌 옛 무덤 속임을 알았지만 비가 그치지 않아 하룻밤을 더 자게 되었다. 그날 밤 원효는 동티(귀신의 장난)를 만나 잠을 이룰 수 없었고, 이는 곧 그에게 큰 깨달음의 한 계기가 되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