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방송]1950-60년대 전반의 영화사 재조명
- 최초 등록일
- 2006.06.03
- 최종 저작일
- 20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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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대중예술의 흐름 교양 강의 학기말 레포트입니다.
목차
들어가며)
본론)
1. 6.25전쟁이 한국 영화사에 미친 영향
2. 이름 없는 전선에서의 전시 영화 활동
3. 한국 영화계의 큰 스승 - 신상옥
4. 휴전이후 새로운 국면을 맞게된 한국 영화사
5. 1950년대 중후반, 한국 영화의 전성기
6. 1960년대, 멜로드라마의 융성 = 영화 산업의 융성
7. 장르의 다양화
8. 군사정권, 외압에 의한 통제, 그에 따른 침체기
나가며)
본문내용
들어가며) 내게 <미워도 다시 한 번>의 상영은 굉장히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당시에 강요되었던 여성들의 이데올로기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고, 편집 기술적인 면에서도 조금 떨어지는 완성도와 빈약한 회상 장면 설정 부분에서 많은 가르침을 얻을 수 있었다.
이 시대 흔히 <미워도 다시 한 번>이란 타이틀을 내 건 프로그램을 많이 접할 수 있다. 이 영화를 패러디한 코미디 물이나, 이 제목을 딴 대중가요, 리메이크 된 연극, 드라마, 영화 등이 흥행에 성공한 사례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그만큼 이 영화는 1960년대를 통틀어 단연 최고 흥행 수준이라 손꼽혔으며, 이는 2, 3편 제작에 영향을 미치는 등 그 인기가 가히 대단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나는 한국 영화의 전성기라 불리는 1950-60년대를 집중 조명하여, 당시의 생활상을 비춰 이 시대를 이해하고, 평소 내가 관심이 있던 한국 영화의 거장 신상옥 감독을 소개하며 한국 영화사를 엮어볼까 한다.
본론)
1) 6.25전쟁이 한국 영화사에 미친 영향
1950년 6월 25일 초여름의 일요일. 한반도의 허리인 38도선을 경계로 남과 북이 동족상잔의 전쟁을 벌이게 된 날이다. 한없이 해맑았고, 한없이 천진난만할 수밖에 없던 아이들의 웃음소리.. 총칼의 무력 앞에, 게다가 한민족의 분열 앞에 작아 질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이들 뿐만이 아니었으리라.
이 전쟁의 여파는 곧 영화계에도 찾아오게 된다. 동란이 터진 후 최초의 손실은 영화인의 납북이었다. 6․25 동란 직후부터 9․28 서울 수복 사이의 백일동안 서울에는 미처 남하하지 못한 영화인들이 많았던 것이다. 이때에 납북된 영화인들이 최인규(감독), 이명우(감독및 촬영기사), 박기채(감독), 김정혁(제작), 최승린(기술자) 등이었고, 그 중에서도 이명우, 박기채, 최인규는 우리 영화사에 뚜렷한 한 획을 그을 만큼 업적을 남긴 사람들이었다. 허나, 한국 영화사의 손실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해방 이전까지 만들어졌던 영화사 초창기부터의 많은 고전필름들이 상실되었던 것이다. 전쟁이 계속되었던 3년 남짓의 포화 속에 북진과 남하를 계속하는 동안 많은 고전필름들은 여기저기 흩어졌던 배급사의 창고와 극장의 영사실에서 회신되고 상실되고 말았다. 이 역시 동란의 아픔이자 슬픔이라 하겠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