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소설]18세기 영국소설,, 로빈슨 크루소와 자본주의
- 최초 등록일
- 2006.06.06
- 최종 저작일
- 20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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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다니엘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와 자본주의, 제국주의등에 관련한 자료입니다 ^^
목차
** 영화“캐스트 어웨이”와 로빈슨 크루소의 비교
**로빈슨 크루소에서 보여지는 제국주의 (프라이데이와 관련하여)
** 로빈슨 크루소와 자본주의
본문내용
‘사회가 먼저인가, 개인이 먼저인가‘라는 문제는 암탉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와 마찬가지이다. 이 문제를 논리적인 문제로 취급하건, 역사적인 문제로 취급하건 어느 한편의 주장은 어차피 그와 반대되는, 똑같이 일방적인 또 하나의 주장에 반박을 받기 마련이다. 사회와 개인은 서로 떼어놓을 수 없다. 사회와 개인은 서로 필요한 상호 보완적인 것이지 대립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그 누구도 외따로 떨어진 섬이 아니며, 그 자체로 완결될 수 없다. 모든 인간은 대륙의 한 조각이요, 본토의 일부분이 다.”이것은 존던의 유명한 말이다. 이 말 속에는 진리의 일면이 담겨져 있다. 한편 고전적 개인주의자인 존 스튜어트 밀은 “사람들이 함께 모인다 해도 다른 종류의 실체로 변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물론 그렇다. 그러나 ‘모여지기’전에도 사람들이 존재했다든가, 어떠한 종류의 실체를 가지고 있었다고 가정하는 것은 잘못이다. 우리 가 태어나자마자 세계는 우리에게 작용하기 시작해서 우리들을 단순한 생물적 단위에서 사회적 단위로 바꾸어 놓는다. 역사 시대든 선사 시대든 어느 단계를 막론하고, 모든 인간은 하나의 사회 속에 태어나서 태어나자마자 사회에 의하여 형성된다. 그가 사용하는 언어도 개인적인 상속물이 아니라 자기가 자라나는 집단에서 받은 사회적 획득물이다. 언어와 환경은 다 같이 그의 사상을 결정짓는 데 기여한다. 곧 인간이 받아들이는 최초의 관념도 타인들에게서 받는 것이다. 흔히들 이야기하는 것처럼 만일 사회에서 유리된 개인이 있다면 그에게는 말도 없고 정신도 없을 것이다. 로빈슨 크루소 이야기가 지닌 영원한 매력은 사회로부터 독립된 개인을 상상해 보려고 한 점이 있다. 그러나 그 러한 시도는 깨어지고 만다. 로빈슨은 추상적인 개인이 아니라 요크(York)에서 온 영 국이었다. 그는 성서를 갖고 다니고 자기의 종족신(種簇神)에게 기도를 한다. 로빈슨 크루소 이야기에는 그의 하인 프라이데이가 등장한다. 그리하여 다시 하나의 새로운 사회가 건설되기 시작한다.
** 로빈슨 크루소와 자본주의
누구나 아는 디포우의 <로빈슨 크루소』는 소설사의 효시적인 작품, 게다가 자본주의 정신을 구현한 최초의 작품으로 평가된다. 크루소 혼자서 바다로 진출한 것은 자본주의의 토대를 이루는 개인주의, 그리고 무인도에서 혼자서 노동을 한 것은 자본주의의 기본인 청교도주의를 구현한 것이라고 하는 분석이다. 그러나 필자가 기억하는 그것은 크루소에 의해 목숨을 구한 불쌍한 흑인노예가 크루소의 다리 밑에 꿇어 앉아 영원히 그의 노예가 되겠다고 맹세하는 장면을 통해서이다. 그 삽화를 필자는 그동안 수없이 보았고, 최근에도 ‘세계의 몇 나라에서만 소개된’ 완결편으로 선전된 책에서 다시 보았으나, 그 ‘완결편’에는 제국주의에 대한 일언반구도 없다. 노예를 구해준 그 날이 금요일이어서 노예는 ‘프라이데이’로 명명되고, ‘주인’으로 섬긴 크루소한테서 영어와 기독교를 배워 함께 영국으로 돌아간다는 그 소설은 전형적인 대영제국주의의 식민지 지배 정당화이다.
참고 자료
18세기 영국소설 강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