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학강독]차자표기
- 최초 등록일
- 2006.06.11
- 최종 저작일
- 20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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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차자표기- 향찰,이두,구결의 특징과 그 표기법
목차
1) 고유명사의 표기(固有名詞 表記)
2) 서기체 표기(誓記體 表記)
3) 향찰 표기(鄕札 表記)
4) 이두 표기(吏讀表記)
5) 구결표기(口訣表記)
본문내용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하기 이전에 우리 선조들은 한자(漢字)를 빌려 문자생활을 했다. 그런데 한자는 원래 중국어를 표기하기 위하여 발달된 문자였다. 그러므로 우리가 한자로 글을 쓴다는 것, 곧 우리의 한문(漢文)은 외국어인 중국어를 글로 나타내는 것이었다. 고대 삼국시대(三國時代)에 정착된 한문은 입으로 하는 말(口語)과 글로 쓰는 말(文語)이 다른 기형적인 상태를 낳았고 이런 상태는 훈민정음이 창제된 후 400여 년이 지난 19세기 말까지도 계속되었다. 한편, 우리 선조들은 일찍부터 한자를 빌려 우리말을 표기해 보려는 노력을 계속해 왔는데 이러한 노력의 자취를 공유명사의 차자표기(借字表記), 이두, 구결, 향찰 등 한자차용표기(漢字借用表記)에서 볼 수 있다.
1) 고유명사의 표기(固有名詞 表記)
한자가 한반도에 유입되기는 기자 조선이후라고 하나 정확한 근거가 없다. 아마도 한자 유입의 시발점은 중국과 우리 민족이 접촉한 위만조선 때나 그 뒤 한사군(漢四郡)의 설치에 따라 들어왔을 것으로 추측한다. 그리하여 삼국정립의 초기에 소수의 지식층에서는 한자를 이해하고 사용하였으리라고 짐작할 수 있으며, 한자의 유입으로 인하여 어느 정도 익숙하여진 우리 선조들은 이것을 자국어(自國語)로 표기하려는 시도가 바로 인명(人名)이나 지명(地名)과 같은 고유명사(固有名詞)표기이다. 삼국 시대에는 일찍부터 한문이 널리 사용되었고, 사서(史書)도 편찬되었다. 사서편찬에는 지명, 인명 등의 고유 명사가 필히 등장하는데, 이를 한자로 표기하는 방법이 따로 발달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이 표기의 원리는 음독 표기(音讀表記), 석독 표기(釋讀表記), 혼합 표기(混合表記) 등 세 가지가 있었다. 음독 표기란 한자의 의미와는 관계없이 소리만을 따서 적는 표기며, 석독 표기란 소리와는 관계없이 `물`을 적을 때는 `水`로 쓰는 표기법이다. 그리고 혼합 표기란, 앞의 둘의 표기법을 혼합해서 쓴 것으로, `혁거세왕(赫居世王)`의 표기가 그 예이다. 赫居世王이란 `불거뉘왕`으로, 赫, 世는 각각 석독(釋讀), 居, 王은 음독(音讀)으로 쓰인 예이다. 그러나 우리와 중국의 음절구조(音節構造)가 다르기 때문에 표기에 어려움이 뒤따라 얼마 사용되지 않고 소멸되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