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근대사]중체서용의 경세가 증국번을 읽고
- 최초 등록일
- 2006.06.11
- 최종 저작일
- 20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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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교양 중국의개혁과혁명을 수강하고 관련된 인물에 관한 책에 관한 감상문(서평)입니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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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증국번은 태평천국의 난을 진압한 이후 외국과의 화친을 기반으로 서양의 군사기술을 비롯한 문물을 도입하고 산업 발전을 도모했던 청나라 말기의 일시적인 중흥기, 즉 동치중흥에 중요한 기여를 했다. 1860년대에 시작된 이른바 양무운동에서 이홍장 좌종당 등과 함께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것이다.
증국번은 청 왕조에게 있어 더 없는 충신이었음과 동시에, 개인적으로는 성실하고 고결한 인품으로 주위 사람들로부터 깊은 존경을 받았다. 특히 충성, 청렴, 강직 등의 덕목을 강조했는데, 정치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음에도 증국번의 태도는 한결같았다. 사상적으로는 정이, 주희를 필두로 하는 송대 유학을 근간으로 삼아 다양한 학문 경향의 장점을 두루 취하고자 하는 태도를 보여주었다. 증국번은 동생 증국전과 함께 호남 출신의 청나라 초기 학자 왕부지의 전집인 선산유서를 편찬, 간행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만주족 왕조인 청나라에 충성을 다했다는 점 때문에, 증국번에 대하여 한간(), 즉 일종의 민족 반역자로 비판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 특히 태평천국의 난을 진압하면서 증국번은 영국, 프랑스 세력의 도움까지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러한 평가는 훗날 청 왕조 전복을 꾀하는 혁명 운동파의 입장이나, 그 보다 더 훗날의 시각에서 내릴 수 있는 평가이다. 예를 들어 공산화 이후 중국에서는, 민중 운동으로서의 태평천국의 난을 진압한 봉건 지주 계급 및 반동 세력의 주구 정도로 증국번을 폄하하는 경우마저 없지 않았다.
한편 증국번은 중체서용론, 즉 중국의 전통적인 가치, 윤리, 사상을 기본 틀로 삼고, 서양의 문물제도를 선택적으로 수용한다는 입장의 선구 격이라고 할 수 있다. 요컨대 증국번과 중체서용론자 그리고 양무운동의 핵심 세력은 전통적인 유교 사상의 우월성을 의심치 않았으며, 그에 대한 자긍심도 결코 잃지 않았다. 이 점 역시 훗날의 관점에서 보면 그들이 극복하지 못한 한계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증국번은 수구파와 변법파의 중간 정도에 해당하는 인물로 볼 수 있다.
21세기에 19세기 중엽, 유교 제국에 마지막 무렵을 살다 간 중국의 최고급 지식인이자 관료, 군사 지도자였던 증국번의 공적도 중요하지만, 태평천국의 역사적 의의도 잊지 않아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중국 근대사를 배우면서 태평천국 운동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볼 기회는 거의 없었는데, 이번에 증국번을 읽으면서 태평천국 운동의 의미를 상기시킬 수 있었다.) 체제를 유지하고 문명의 전통을 지키려는 증국번에 가치를 두면, 자연히 혁명주의자인 홍수전의 행위가 비인륜적으로 보이게 마련이다. 하기야 지금의 관점에서 보면 홍수전은 정말 욕을 먹어야 마땅하지만, 그가 말세에 백성들의 입장에서 세상을 새롭게 하겠다는 마음은 지금 이 시점에서도 높이 사지 않는가?
지금도 개혁과 수구사이에서 많은 갈등을 유발하는 사건이 적지 않다. 역사는 순환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과거의 사실을 거울삼아 지금 현실에 비춰야 할 때가 왔다. 이것이 21세기에 증국번을 읽는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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