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조선의 중앙군과 지방군에 대한 레포트입니다.
학교에서 수업 과제로 한 것입니다.
상세하게 조사했으니 많은 도움이 되시리라 봅니다.
목차
1.서론
2.중앙군
1)조선전기(밑에 4개의 구분)
2)조선후기(밑에 2개의 구분)
3.지방군
1)조선전기(밑에2개의 구분)
2)조선후기 속오군의 편성
4.결론
본문내용
I. 서론
조선의 건국 초기 중앙군사제도는 건국초기 이성계의 친위부대인 의흥친군위(義興親軍衛)를 중심으로 고려의 2군6위(二軍六衛, 8衛) 고려 전기 중앙군 조직. 태조의 직속군(直屬軍)이 근본이 되어 편성되었으며 고려 경군(京軍)의 핵심부대를 이루었다. 2군은 응양군(鷹揚軍)·용호군(龍虎軍), 6위는 좌우위(左右衛)·신호위(神虎衛)·흥위위(興威衛)·금오위(金吾衛)·천우위(千牛衛)·감문위(監門衛)를 말한다.
체제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뿐만 아니라 당시 개국공신들은 여전히 그들의 사병에 대한 통제권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군사체제가 태종에 의하여 사병혁파가 이루어지면서 정비되기 시작하여 세조대에 가서 중앙에는 수도방위를 위한 오위체제가 확립되었고 국왕의 친위병인 금군(禁軍)도 정비되어 중앙군의 핵심은 이들 오위병과 금군으로 편제되었다.
지방의 군사조직은 조선 초기 고려의 제도를 답습하였으나 이후 도절제사(都節制使), 도와 영(營)을 연결하는 진(鎭)이 설치됨과 함께 진군의 성립 등의 과정을 밟다가 15세기 세조 때 진관체제(鎭管體制)로 완성된다.
그러나 이후 임진왜란에서 보여준 군사제도의 혼란은 국가의 안위와 직결될 수 있는 문제였기에 군제변화가 시급했고, 이에 따라 중앙군사제도는 상비병 체제의 훈련도감(訓鍊都監) 등으로, 지방군사제도는 각 지방의 주민을 농한기 때 훈련시켜 군인으로 편제한 속오군(束伍軍)을 조직하여 변화를 꾀하고자 한다.
이렇듯 조선시대의 군사제도는 조선 건국부터 정치적, 국제적인 필요에 의해 계속적인 변화를 겪게 되는데, 여기서는 초기의 중앙군과 지방군의 편제과정과 확립, 16세기 임진왜란과 함께 나타나게 되는 체제의 변화에 초점을 맞춰 내용을 살펴보고자 한다.
II. 중앙군
1.조선전기
(1) 10위제(衛制)와 의흥삼군부(義興三軍府)의 성립
이성계에 의하여 개국된 조선왕조는 고려의 옛 제도를 답습하면서도 옛 테두리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였는데, 그 중 하나가 수도를 한양으로 옮기는 일이었다. 물론 그 이전에도 건국 초기의 약한 왕권을 강화하는 노력은 계속되었으며, 그러한 노력의 일환이 왕권보호를 위한 시위패(侍衛牌)의 개편과 수도방위에 주력할 중앙군을 강화하는데 귀결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이성계는 개국한 지 9일 만에 문∙무 관제를 정하여 반포하였고, 국가의 정치적 기틀을 다지는데 필요한 군사적 배경이 될 수 있는 중앙군제는 이름뿐이던 고려 때의 2군 6위의 8위군(衛軍)에 태조가 친히 거느리고 있던 의흥친군좌위와 우위를 합쳐 10위제도로 개편하였다. 각위에는 중, 좌, 우, 전, 후령 1령은 1,000명이기 때문에 50령이면 약 5만 명이 된다.
을 두어 모두 50령으로 조직하여 일단 엉성하나마 중앙군의 성립을 보게 되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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