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세종시대의 문화발전
- 최초 등록일
- 2006.06.13
- 최종 저작일
- 20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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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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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들어가면서
2. 세종시대의 문화발전
ㄱ. 어문정책
ㄴ. 농경정책
ㄷ. 과학정책
ㄹ. 음악
3. 나오면서
본문내용
1. 들어가면서
세종시대는 조선시대의 통치기반을 쌓은 조선시대의 황금기였다. 안으로는 통치체제의 정비로 사회를 안정시켰고, 밖으로는 영토확장을 통해 조선의 힘을 대내외적으로 널리 드러낸 시기였다. 또한 이 시대에는 훈민정음(訓民正音)이 창제되어 민족문화 발전의 기초를 마련하였을 뿐만 아니라 농업기술, 과학기술 등 실용적인 학문분야에 있어서도 커다란 발전을 가져와 문화가 크게 발전했던 시기였다.
이러한 세종시대의 문화는 고려말, 조선초기의 여러 가지 역사적 여건 아래에서 피어난 성숙된 문화이다. 당시 외래문화에 대한 수용과 새로운 역사적 조건이 조성된 기반을 바탕으로 하여 정치적인 안정과 농업기술 및 과학기술의 향상, 경제력의 증강, 한글창제, 음악의 정리 등 문화의 전반적인 향상이 이루어졌으며, 이로 인해 민족문화의 확고한 기반이 형성되었다.
이에 본문에서는 어문정책, 농경정책, 과학정책, 음악에 대해서 알아보면서 세종시대의 모습을 살펴보려 한다.
2. 세종시대의 문화발전
ㄱ. 어문정책
세종시대의 어문정책은 여러 가지 복합적인 요인에 의해서 형성된 것이다. 이러한 요인들 가운데에서 제일 먼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조선시대의 건국이념이었던 유교라고 할 수 있다. 세종시대의 가장 중요한 어문정책이 고유문자인 훈민정음 창제로 실현되었지만 이러한 위대한 업적도 당시의 사상적, 학문적 배경이었던 유교중심의 언어관에서 나온 것이었다. 이에 대해서 알아보면
첫째, 조선조의 유교는 송학(宋學)에 바탕을 둔 것이었으므로, 우주만물의 모든 현상을 역(易)의 원리나 태극설(太極說)로 설명하는 송학자들의 우주관에 따라서 인간의 성음도 파악했었고, 유교의 예악사상에 의하여 정성(正聲), 정음(正音)의 설정이 나라를 다스리는데 필요한 조건이라고 생각했었다.
둘째, 성인지도(聖人之道)를 옳게 이해하려면 음운학 및 문자학에 관한 이론적인 연구가 필요하다는 송나라 유학자들의 설을 따랐고, 홍무정음(洪武正音) 서문 등에 나타난 표준음으로서의 「正音」설정사상에서도 영향을 받았다.
셋째, 때마침 당시 무르익고 있던 「우리 것」에 대한 자각으로, 삼국시대부터 한자, 한문으로 표기생활을 해 오고 있는 것이 억지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신라부터 사용해오던 한자음훈차표기법(漢字音訓借表記法)에 대해서도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넷째, 이 밖에 건국초부터 적극적으로 추진해 온 역학정책(譯學政策)을 원활히 수행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표음문자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었다.
참고 자료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편, 『세종조문화연구 Ⅰ,Ⅱ』1982, 전영사
박종화, 『세종대왕』1993, 기린원
박영규, 『세종대왕과 그의 인재들』 2002, 들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