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전통문화]우끼요에
- 최초 등록일
- 2006.06.15
- 최종 저작일
- 20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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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일본의 풍속화 우끼요에에 대해
목차
우끼요에의 발생
주제와 용도
작품과작가
영향
문화적 의미
본문내용
(1) 우키요에의 발생
일반적으로 유럽의 판화는 유성잉크를 롤러로 칠하여 찍어내는 방법을 흔히 사용하였으나 이전부터 종이와 먹 등의 필기구를 사용하였던 동양에서는 붓으로 칠해 찍는 수성인쇄법을 발전시켰다. 이러한 수성용구의 사용은 같은 재료로 그려진 산수화나 화조화의 수묵화 원본과 비슷한 느낌을 주어 판화로 복제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였으며 중국에서 이러한 채색수묵화의 복제를 위하여 개발된 다색판화는 우리나라를 통하여 일본에 전해져서 우키요에의 판법을 발전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일본에서는 한국의 영향이 깊었던 8C경 나라시대(708-781)부터 목판을 이용한 불인과 날염 등이 있었다고 한다. 이후 17C의 에도막부시대는 당시 안정된 정치상황이 경제나 문화의 발달을 가져왔고, 상공업의 발달은 새로운 유형의 시민계급을 탄생시킬 정도로 사회발전이 이루어졌다. 이때 유럽미술의 유입으로 일본인들은 합리적이고 사실적인 측면에 관심을 가졌다. 이러한 사회상이 우키요에에 그대로 반영되어 사대부의 산수화나 화조화 대신 풍속화, 미인도, 명소풍경, 가부키의 주인공 등 일반서민들의 관심이 판화의 주제로 표현되었다.
(2) 우키요에의 주제와 용도
‘에도에’라 불리던 우키요에를 에도사람들은 ‘베니에’, 또는 ‘니시키에’라는 명칭으로 불렀다. 베니는 잇꽃의 꽃잎으로 만든 물감을 말하는데, 목판을 여러 벌 만들어 다양한 색을 표현하는 다색판화를 ‘베니즈에’라 한다. 또 하나의 명칭인 ‘니시키에’는 당시에 에도에서 유행하던 일종의 사교적인 놀이인 그림, 달력 등의 교환회를 계기로 비약적인 발전을 하였다. 우키요에는 인기인의 브로마이드와 같은 역할을 했는데, 묘사대상이 주로 가부키 배우나 스모선수, 미인들이었다. 또한 풍경화와 화조화가 우키요에의 주제로 유행하였는데, 화조화는 그림위에 와카나 하이쿠를 써 넣는 등 계절의 감각을 충분히 전달하려 했다. 뿐맘 아니라 우키요에는 화화를 감상하는 기쁨을 제공했고, 시사적 정보 전달기능도 수행하였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