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사]공주 `공산성` 에 대하여
- 최초 등록일
- 2006.06.17
- 최종 저작일
- 20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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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공주에 있는 공산성은 웅진시대 성왕대에 사용되었던 성입니다.
내부 유물출토로 미루어 궁궐로서의 기능도 했음을 추측할수 있습니다.
다양한 유물과 흔적들은 공산성의 의미를 더욱 크게 만들어 줍니다.
본 자료는 공산성에 대한 전반적 내용을 사진자료와 함께 담아놓았습니다.
좋은 참고 되시길 바랍니다.
목차
1. 공산성 개관
2. 공산성의 명칭
3. 공산성의 연혁
1) 성곽의 시축(백제시대)
2) 반신라운동의 거점(통일신라)
3) 석성으로서의 개축(조선중기)
4) 인조의 공산성 파천
4. 공산성내의 유적
1) 공산성 쌍수정(雙樹亭)
2) 쌍수정 사적비(事蹟碑)
3) 공북루(公北樓)
4) 공산성연지(公山城蓮池) 및 만하루(挽河樓)
5) 임류각(臨流閣)
6) 공산성 광복루(光復樓)
7) 명국삼장비(明國三將碑)
8) 영은사(靈隱寺)
9) 공산성 연못
10) 금서루(錦西樓)
11) 진남루(鎭南樓)
12) 동문루(東門樓)
13) 추정왕궁지(推定王宮址)
본문내용
1. 공산성 개관
공산성은 백제시대의 웅진성(熊津城)으로 백제의 웅진 도읍기에는 도성(都城)으로 기능하였고, 사비 도읍기에 이르면 북방의 중심성으로 자리하면서 백제시대의 군사․행정적인 면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이 성은 비단 백제시대 뿐만 아니라 백제가 멸망한 후 통일신라시기에도 웅천주의 수부에 위치한 중심성으로 자리했으며 고려․조선시대에 이르면 호서지방의 행정중심지가 공주에 위치하면서 공주의 지정학적 중요성과 비례하여 공산성의 기능도 다양하게 전개된다.
문주왕(文周王) 원년(475) 한산성(漢山城)으로부터 이곳으로 도읍을 옮겨 삼근왕(三斤王), 동성왕(東城王), 무령왕(武寧王)을 거쳐 성왕(聖王) 16년(538)에 부여(사비)로 옮길 때까지 64년간 왕도를 지킨 이 산성은 북으로 금강이 흐르는 해발 110m의 능선에 위치하는 천연의 요새로서 동서로 약 800m, 남북으로 약 400m 정도의 장방형을 이루고 있다. 능선과 계곡을 따라 쌓은 포곡형(包谷形)이며 원래는 토성(土城)이었으나 조선 선조(宣祖), 인조(仁祖) 시대(時代)에 대부분 현재와 같은 석성(石城)으로 개축되었다. 성곽의 총 길이는 2,660m로 외성(外城)을 제외하면 2,193m가 된다. 현재의 성벽은 높이 약 2.5m, 너비 약 3m로 대부분이 보수되었고 성내 유적은 금서루(錦西樓), 진남루(鎭南樓), 공북루(拱北樓), 쌍수정(雙樹亭), 명국삼장비(明國三將碑), 쌍수정사적비(雙樹亭事蹟碑), 영은사(靈隱寺), 연지(蓮池) 및 만하루(挽河樓), 임류각(臨流閣), 광복루(光復樓)등이 남아 있다.
2. 공산성의 명칭
공산성의 다른 이름으로서는
참고 자료
< 공산성 >, 공주사범대학 백제문화연구소 충청남도, 1982
< 공산성 성지발굴조사보고서 >, 공주대학교 박물관 ,충청남도 1990
< 공산성 백제추정왕궁지발굴보고서 >공주대학교 박물관, 충청남도 1992
< 공산성건물지 >공주사범대학 박물관, 충청도,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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