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이 글은 개항전후부터 일제시대에 이르기까지의 민족자본의 실태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개항과 국내시장의 변화, 화폐제도의 문란과 화폐정리사업, 열강의 이권자원침탈, 상권수호운동의 전개와 식산흥업운동 등을 주요 주제로 하였다. 민족자본의 실태를 살펴봄으로써 우리가 식민지의 길을 걷게 된 배경을 알아 보고자 함이다.
목차
1. 序論
2. 本論
(1) 개항과 국내 시장구조의 변화
(2) 화폐제도의 문란과 화폐정리사업
(3) 열강의 이권자원 침탈
(4) 상권 수호운동의 전개와 식산흥업운동
3. 結論
본문내용
1. 序論
토착자본이 정치적․경제적 영향력을 발휘할 만한 조건을 갖추지 못한 단계에서 외세의 강요에 의해 문호가 개방되어 국내산업의 자율적인 자본주의화는 사실상 불가능하게 되었다. 외국상품의 무제한적 침입과 국내 원자재의 유출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국내 수공업 생산구조는 근대적 공장제로 발전하지 못하였으며, 채굴권 또한 외국자본에게 넘어감으로써 자생적 발달이 어렵게 된 것이다. 대한제국 정부의 식산흥업(殖産興業)정책 아래 관료자본․상업자본을 바탕으로 한 약간의 근대적 회사와 생산공장이 설립되었지만, 곧 일본의 보호국화됨으로써 자율적인 산업화가 좌절되었다. 내외적으로 어려운 여건 속에서 민족자본의 자구적 노력은 일제의 식민지화 정책에 의해 점차 무력해져갔으며, 이들이 근대적 민족자본으로 성장할 가능성도 점점 사라지게 된 것이다.
2. 本論
(1) 개항과 국내 시장구조의 변화
강화도조약(1876)과 조일수호조규부록 및 통상장정(1876)은 조일무역을 급격히 증가시켰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불평등 조약에 불과했다. 이후에도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1882), 조미통상조약(1882), 조영조약(1882), 조독조약(1882) 등 열강과의 불평등 조약이 이어졌다.
치외법권이 인정되고, 부산․인천․원산 등 세 항구의 개항이 규정되었으며, 무관세 무역이 용인되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일본화폐의 자유로운 유통과 일본은행의 조선진출에 대한 기반이 마련되어갔다.
개항에서부터 임오군변(1982)․갑신정변(1884) 때까지 조선의 대외무역은 일본에 의해 독점되다시피 하였지만, 임오군변과 갑신정변 이후 청나라의 정치적 간섭이 심화되면서 무역상의 사정이 변화하였다. 즉, 청은 상민수륙무역장정을 체결하고, 자본력․금융지원․정치지원의 우세를 바탕으로 조선에서의 영향력을 증대시켜나갔던 것이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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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만길外, 『한국사-12.근대민족의 형성II』, 한길사,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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