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인물사]원효와 의상
- 최초 등록일
- 2006.06.22
- 최종 저작일
- 20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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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원효와 의상
1.생애
2. 저술
3. 사상적 경향
4. 역사적 의의
본문내용
* 원효
1. 생애 및 활동상
(1)출생
원효의 출생연대를 살펴보면, 삼국유사 원효불기(元曉不羈)에 의해 신라 진평왕 39년인 서기 617년이고, 열반연대는 고선사서당화상탑비(高仙寺誓幢和尙塔碑)에 의해 신라 신문왕 6년 서기 686년임을 알 수 있다. 그러니 원효가 생존하였던 연대는 지금으로부터 약 1300여 년 전으로, 신라의 진평왕 26대, 선덕여왕 27대, 진덕여왕 28대, 태종무열왕 29대, 문무왕 30대, 신문왕이 31대로서 문무왕 때 삼국통일이 되었으니, 원효는 삼국통일전후에 걸쳐 생존하였던 인물이다. 신라가 삼국통일을 이룩하게 된 배경에는 통일전야에 있어서의 태종무열왕 같은 탁월한 인물과 그 주변의 외교적 수완가인 김인문과 명장 김유신의 역할도 컸을 것이나, 불교의 호국사상이 그 정신적인 지주가 되었을 것이다. 이에 중심적 인물이 바로 원효이다.
원효의 탄생을 보면, 원효의 모친은 유성이 품속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고 임신을 하였는데, 달이 차 압량군남 북치촌북 율곡 밤나무 아래를 지나다가 갑자기 출산하게 되어 미처 집에 돌아가지 못하였는데, 이때 남편의 옷을 나무에 걸고 그 속에서 지냈기 때문에 그 나무를 사라수라하고, 그 나무의 열매가 이상하여 사라율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출산하려 할 때에 오색구름이 땅을 덮었다고 하는데, 이것은 상서로움을 나타낸 것으로 원효의 탄생을 미화하기 위한 묘사라고도 할 수 있다. 이때가 바로 신라 제26대 진평왕 39년(617)이었다.
원효의 가계에 대해 알아보면, 삼국사기 설총전에 의해 원효의 속성은 설씨이고, 조부는 잉피공(仍皮孔) 또는 적대공(赤大公), 그리고 부친은 설담날 또는 담날내말(談捺乃末)이라고 한다. ‘원효’는 출가 이후 스스로 지어 부른 법명인데 위에서 언급한 삼국유사 원효불기에 의하면, 불교를 처음으로 빛나게 하였다는 의미이고, 원효는 방언으로서 당시 사람들은 새벽이라고 불렀을 것이라고 한다.
참고 자료
·의상 그의 생애와 화엄사상, 김두진, 민음사
·부석사 홈페이지 http://www.pusoksa.org
·63인의 역사학자가 쓴 한국사 인물열전, 돌베개